[아침뜨락] 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누구나 살면서 약을 먹는다. 약을 먹고 싶어 먹는 사람은 없다. 몸과 마음이 아프면 약을 먹게 된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전부인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약을 먹는다. 약은 건강을 지켜준다. 하지만 약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약을 삼킬 때 목구멍에 느껴지는 이물감 때문이기도 하고 몸에 좋은 약일수록 쓰다는 말처럼 고약하게 쓴 약도 한 몫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눈을 질끈 감고 코를 틀어막으며 약을 먹는다. 이래저래 약을 먹지 않고 산다는 것은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얼마 전부터 아내와 딸이 보약을 먹고 있다. 보약을 지을 때 한의사로부터 보약 먹는 방법을 들었다. 생 무, 냉 음료, 짜고 매운 음식, 커피, 밀가루 음식 등은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는 보약을 먹어본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의 한약복용법이다. 아내와 딸이 같은 한의사에게 한약복용법을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약복용법을 밥 먹듯 어기고 딸은 꼬박꼬박 지킨다. 보약 먹는 횟수도 아내는 거르기 일쑤지만 딸은 복용시간까지도 맞추어 먹는 정성을 들인다. 아내와 딸 중에 누가 더 보약의 효과를 보게 될지는 자명하다. 보약의 효과를 보려면 한약복용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보약을 먹을 때는 한약복용법이 있듯 삶에는 인생사용법이 있다. 인생사용법의 첫 페이지는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며 사는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지켜야 할 것은 법, 윤리, 도덕, 규범, 원칙 등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들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세상과 인생은 엉망진창이 된다. 보약을 생각날 때만 대충 먹으면 약 효과가 떨어지듯 세상살이에서 지켜야 할 것을 무시하면 성과물을 내기는 어렵다. 보약을 먹는 목적이 불분명하면 한약복용법을 지키기 어렵듯이 삶의 방향이 뚜렷하지 못하면 인생사용법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인생사용법을 제대로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것들은 유치원에서 배운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지켜가며 살 수 있는 지혜는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 터득할 수 있다. 배우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딸이 한약복용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덕분이다. 삶의 원리와 원칙들을 지키며 사는 힘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인생사용법대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념이나 사욕을 버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념이나 사욕을 멀리할수록 정도를 지키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다. 보약이 아내와 딸에게는 기력을 회복시켜 주고 나에게는 삶의 자세와 살아가는 지혜를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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