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 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최근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연친화적인 정서를 심어주고 농작물의 성장과정을 보고 느끼면서 배울 수 있다는 교육적인 기대효과의 결과이다. 여기에 멋진 노후를 꿈꾸는 사람들의 기대가치가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농사체험을 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텃밭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나도 농사체험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농사의 경험이 없는 초보자로서 가꾸는데 힘들지 않은 상추, 토마토, 고추를 심었다. 상추는 씨앗을 뿌렸고 토마토와 고추는 모종으로 심었다. 상추 씨앗은 두둑을 넓게 하여 뿌려야 하는데 좁은 두둑에 고추와 토마토 모종 심듯이 뿌렸다. 농사 초보자의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텃밭에 올라오는 잡초의 기세는 대단했다. 두둑에는 비닐을 깔아 괜찮았지만 고랑에 나는 풀이 문제였다. 풀 뽑기를 하루 이틀 미룬 게으름이 준 고통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풀이 연할 때 들어가는 힘의 몇 갑절의 기운을 써도 잘 뽑히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다. 평소 미루며 사는 것에 익숙한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텃밭을 자주 찾고 정성을 들여서인지 심은 작물이 잘 커 주었다. 토마토는 곁가지로 나오는 순을 따주어 성장에 필요한 양분의 손실을 막아 주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선택과 집중을 하며 사는 모습과 닮았다. 세상을 살면서 힘을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고 있는지에 생각이 머문다.

장맛비가 내린 후에 찾은 텃밭의 상추와 토마토가 엉망진창이다. 상추 잎이 물러 터져 축 처졌다. 토마토는 껍질이 갈라졌다. 조금 더 키워서 따먹겠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물러터진 상추와 갈라진 토마토를 보면서 속은 상했지만 '때'를 맞추며 사는 지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장맛비가 내릴 때의 바람 때문인지 토마토 가지 하나가 수액을 겨우 공급할 정도만 남겨진 채 부러져 있다. 부러진 가지에 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안타까움은 더했다. 부러진 가지 부분을 동여 매주려 하자 지인이 말린다. 한 두 개라도 수확하고 싶으면 적과(摘果)하라고 일러주어 미련이 남지만 눈 딱 감고 따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손에 넣을 수 있는 결과를 멀리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움켜쥐고 있기에 내려놓고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수확할 때쯤 보니 토마토가 유난히 작다. 거름은 주지 않고 토마토만 많이 따먹겠다는 심보 탓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공짜로 얻으려는 마음이 지천인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올 여름은 장마 끝에 찾아온 햇볕을 쐬며 토마토와 고추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기 위해 오고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 자신을 만나고 내 삶의 뒷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남은 생에 여름의 햇볕을 몇 번이나 쐬며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햇볕도 싫지 않다. 내가 직접 키운 신선한 고추와 토마토를 은근히 기대하는 아내를 보는 행복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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