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박상연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1914년 12월 5일 두 팀의 탐험대가 북극탐험 길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갑자기 얼어버린 바다에서 배가 꼼짝도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살인적인 추위속에서 어떤 교신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두 탐험대의 운명은 달랐다. 칼럭 호에 타고 있던 캐나다 탐험대는 수개월만에 11명이 죽는 비극을 겪었다. 비극의 원인은 서로 식량과 연료를 놓고 도둑질하는 등 서로를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인듀어런스 호에 타고 있던 영국 탐험대는 무려 634일이라는 조난기간동안 단 한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은 채 승무원 27명 전원이 구조되는 기적을 이뤘다.

두 탐험대의 운명은 어디서 갈렸을까?

인듀어런스 호에는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었다. 섀클턴은 12년 전 탐험대가 버리고 갔던 비상식량을 찾기로 결정했다. 썰매와 구명보트로 하루 5마일씩 얼음벌판을 가야하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강행했다. 절망에 빠진 대원들에게 명확한 공동의 목표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섀클턴은 점차 배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필요한 모든 물건을 버리고 개인 소지품은 2파운드 이상 가지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고는 당장 자신은 주머니에서 금으로 된 담배케이스와 금화를 꺼내 눈속에 던져버렸다.

탐험대의 생환 기적은 조직내의 힘겨루기가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승무원들간 양보와 희생을 이끌어내 갈등구조를 만들지 않았던 리더의 힘이었다.

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돈 봉투 사건으로 연일 당이 쑥대밭이 된데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가동되면서 집안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4월 총선 위기감을 느끼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계파싸움과 내부 폭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계파도, 선·후배도, 당도 생각않고 개인적인 소신과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수도권 초·재선의원들은 재창당을 놓고 '하자'는 의원과 '아직은 아니다' 라는 파로 갈라졌다. 비대위는 친이·중도·쇄신파로 나뉘어져 갈등이 유발되고 있고, 당 밖에서는 박세일 신당 추진 소문도 무성하다.

비대위가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문구를 빼기로 했다는 등 때아닌 보수 논쟁이다. 의원들 간 각종 폭로나 음모론은 특정한 방향성도 없다. 돈 봉투 파문과 관련해서는 친 박이 과거 친 이를 죽이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정작 돈 봉투사건에 연루된 전 국회의장은 사과 한마디도 없다.

당 쇄신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자기만 살겠다고 집안 기둥을 빼서 파는 사람들이라는 내부 비판도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부패한 이미지의 정당을 타파하기 위해 "국민만 바라보자"고 했지만 의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다. 총선에서 자기가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천을 받기위해 자기 셈법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모두가 당이 아닌, 국민이 아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노자(老子)는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온화한 분위기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일명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철학이다. 한나라당이 진정 자신을 낮추고 국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혁신의 방향이 나올 것이다.

민주통합당 모바일 투표 선거혁명에서 보았듯이 이제 정치는 더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그런데도 4·11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나라당 내 집안싸움은 언제 그칠지 모른다. 이러다간 TV개그콘서트의 일명 '비상대책위원회'와 닮은 꼴이 될 수 있다. 선장이나 선원이 방향타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니 배가 어디로 가겠는가?

지금이 바로 한나라당에게 섀클턴과 같은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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