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박상연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쇼핑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한바구니씩 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상품을 만지작거리다 몇 개만 골라 담는다. 쇼핑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막상 계산대에 와서는 고른 상품 중 몇 개는 구입을 포기하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 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독일연수때 뮌헨의 한 대형마트에 잠깐 들렀을 때 목격한 광경이다. 검소한 독일의 국민성 때문일까. 독일은 대형 유통시설의 일요일과 공휴일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또 대형마트가 인근 소규모 상가 기존 매출에 10%이상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면 아예 허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대형점포들이 평일 밤 10시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 영국도 280㎡이상 대형점포는 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 까지만 영업이 가능하다.

대형마트의 야간 영업제한과 휴일 영업을 금지하는 근본 취지는 근로자의 노동조건을 고려하기 위한 것이다. 유통근로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보호목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근 영세상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심야영업을 제한하고 한달에 1~2회 강제로 쉬게 하는 조례제정에 나서면서 관련업계가 시끄럽다.

지난 7일 전주시의회가 가장 먼저 조례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서울, 부산, 인천, 울산, 광주 등 대도시를 비롯해 익산, 진주, 목포, 강릉, 원주 등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조례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충북의 시·군은 조례제정에 미온적이라고 한다. 이미 관련법이 제정됐는데 다른 지자체 눈치보는 것은 꼼수다.

충북의 경우 대형마트는 이마트 3곳을 비롯해 홈플러스 4곳, 롯데마트 4곳, 기타 1곳 등 12곳이 성업중이다. SSM은 청주에만 22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전통시장으로부터 반경 500m이내 SSM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관련 법을 제정했다. 그러다가 효과가 없자 반경 1㎞로 강화했다.

하지만 이미 SSM은 시내 골목마다 다 들어서 있다. 골목상권을 대기업에 다 내 준 상황이다. 서민 입법은 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조치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마트가 지방마다 포화상태로 입점해있는 마당에 이 조치가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밤 늦은 시간대에는 전통시장이 문을 열지 않아 고객이 전통시장으로 갈 수도 없다.

반면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으면 토요일에 장을 보기 때문에 휴무일에 발생할 매출이 모두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매출 부진을 우려한 업계의 반발과 꼼수가 나타나고 있다.

얼마전 청주의 한 대형마트가 오전 10시에 개장해왔던 영업시작 시간을 1시간 앞당겨 오전 9시로 변경하고 밤 11시까지 해왔던 영업시간을 1시간 늘려 밤 12시까지 하기로 했다.

휴일 영업을 못하게 될 것에 대비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영업시간을 오히려 늘리겠다는 심산이다. 결국 시민단체의 반발로 철회하는 망신(?)을 당했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한 것은 이미 포화상태여서다. 또 지방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가고 있지만, 이익이 지역사회에 환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근 전통시장과 상가들이 타격을 입어 문을 닫게되고, 결국에는 서민들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인데도 업계는 영업제한 무효 헌법소원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의 주장은 강제휴업 조치가 사업자의 영업자유권,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영업제한 반대이유가 소비자의 불편과 고용감소라고 겉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기업의 매출감소 때문이라는 사실은 감출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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