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박상연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 완장(腕章)이다. 완장의 위력은 윤흥길의 소설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소설 '완장'은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된 최 사장이 동네 날건달 임종술이란 인물에게 저수지 관리를 맡기자, 완장을 찬 임종술이 안면몰수하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내용이다.

과거 군대나 권위의식 또는 특권의식이 만연된 사회를 빗대 완장문화가 판을 친다는 얘길한다.

요즘 완장중에는 국회의원 완장 '금배지'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고소의 달인' 강용석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을 병역비리 혐의로 고소했다가 완패를 당하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러던 그는 또 다시 '제주 해적기지' 발언을 한 '고대녀'를 고소하며, 이번 총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왜 그럴까?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생기는 특권이 200여개에 달한다. 불체포특권, 면책특권은 물론 연금지급, 항공 및 철도 무료이용, 사무실 보조부터 시작해서 자기 돈을 내는 것은 전혀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출세의 수단이며, 특권층의 전유물인 셈이다. 정치인 중 국회의원처럼 빛나는 직업은 없다. 우스갯소리로 교수, 국회의원, 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어느 직업이 제일 폼이 납니까?"라고 질문하면 '국회의원'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한다. "책임질 일 없고, 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4·11총선을 앞두고 과거에 국회의원 맛(?)을 본 사람들은 어김없이 재도전장을 내민다. 여기저기 철새처럼 기웃거리다가 공천을 안주면 신당을 만든다. 공천후유증도 거세다. 음독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 고소전이 난무하고, 무소속 연대 출마 으름장까지 놓는다. 이판사판이다.

저마다 나서는 후보들을 보면 정말 깨끗해 보인다. 이들중 누구라도 뽑아주면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몸 바칠 각오가 돼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몸을 낮춘다. 요즘처럼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많았던 적이 있을까.

하지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순간부터 180도 달라진다. 이때부터 '완장문화'가 판을 친다. 과분한 완장을 믿고 홍위병 행세를 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나라 예산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며 힘을 과시한다. 자기네 연금 올리는데는 만장일치다. 국회의원 숫자도 멋대로 300명으로 늘렸다.

오히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저축은행 피해자 특별법'을 밀어붙이려하고 있다. 완장 찬 국회의원 주변에는 줄을 대려고 사람들이 모인다. 그냥 모르는척 도와주고 적당히 돈으로 바꿔치기한다. 더 큰 완장을 차기 위해 국회의장에도 도전한다. 돈 봉투로 표를 매수한다. 그러다 들통나면 오리발 내밀면 그만이다.

그럼 국회의원 활동은 어떤가?

4·11총선을 앞두고 법률소비자연맹이 18대 국회의원의 지난 3년간 의정활동을 분석한 것을 살펴보자. 평가가 가능한 국회의원 258명의 평균 성적은 116점 만점에 65.19점이었다.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 동안 자리를 잘 지켰는지 판단하는 평균 재석률(자리지킴률)은 고작 28.92%다. 대정부질문 기간에 평균 10명중 3명만 자리를 지켰다는 얘기다. 의안표결처리(전자투표)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국회의원 의안표결 참여율은 전체 의안건수의 평균 68.7%에 불과했다.

반면 18대 국회 출범이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된 징계안은 총 52건이다. 이중 성희롱 사건으로 국회에서 제명 결의된 강용석 의원은 동료들의 덕분에 살아났다.

이것이 18대 국회의원의 초라한 성적표다. 후보시절 외쳤던 '신뢰와 봉사'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국회의원 배지만 달면 왜 DNA가 달라지는 걸까.

하루빨리 국회의원의 비뚤어진 '완장문화'를 버리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도 없다. 유권자들이 19대 총선에서 완장에만 탐욕을 내는 후보를 철저히 걸러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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