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입법부가 마비된지 한 달만에 지각 개원하게 됐다. 막판까지 쟁점으로 남아 있던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대통령 내곡동 사저 문제 특검, 언론사 파업 처리 문제에 대해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 합의한 결과다. 그러나 개원이 되더라도 대법관 임명동의안은 청문회 일정상 임기개시일(7월 11일) 전까지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야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개원 협상을 한달간 끌어오는 사이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치욕적인 일이 벌어졌다. 국회의원 세비(歲費) 반환 논쟁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국회의원 전원을 상대로 세비 반환 및 가압류 청구소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신임 대법관들이 임기를 시작할 수 없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 사유다.

변협은 또 국회 개원을 강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헌법소송과 회기시작 후 일정시점까지 원 구성을 못할 경우 선관위의 국고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의원직을 박탈하는 내용이 담긴 입법 청원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국회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만큼 권리도 포기하라는 뜻이다. 세비는 국회의원의 직무활동과 품위유지를 위해 지급하는 보수인데, 일을 안했으니 세비도 내놓으라는 논리다.

한창희 전 충주시장(두레정치연구소 대표)은 한술 더 떠서 국회의원에게 배상금을 물려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 뽑은 국회의원의 임기가 개시돼 국회가 문을 연지 한 달이 됐지만 아직 원 구성도 못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의무 위반으로 법정기일이 경과한 날로부터 국회의원들이 받는 세비보다 훨씬 많은 배상금을 강제로 납부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개원이 늦어진 것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따갑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21일 이틀간 성인 남녀 610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세비와 관련한 의견을 물은 결과,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66%로 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국회의원도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세비를 줘야 한다'는 의견은 28%에 그쳤다.

급기야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총선 공약대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 6월 세비 전액을 반납하기로 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개원이 안되는 책임을 모면하는 정치적인 쇼라고 반박하고 있다.

걸핏하면 일 안하고 놀고 먹는 식물국회. 나라 살림을 맡고 있는 국회의원이 일을 하지 않고 세비만 챙기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옛부터 나라를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서 녹봉을 챙기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윈헌이 수치(羞恥)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행해지고 있을 때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녹봉이나 받아 먹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도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녹봉을 받아 먹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憲問恥, 子曰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心"논어 헌문편)고.

맞는 말이다. 국회의원에게 엄청난 특권과 세비를 주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돈 안받고 일도 안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은 '일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제 19대 국회에서는 일하겠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여야 정당이 경쟁적으로 연금폐지, 무노동무임금 적용, 면책특권 폐지 등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도 제정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말이 앞서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변죽만 울리는 '정치적인 쇼'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국회의원님들 제발 밥값좀 하세요'.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