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정유사들이 휘발유가격을 같이 올리고, 이통사들은 휴대폰 요금도 동일하게 올린다. 보험회사는 서로 짜고 보험료를 얼마 간격으로 인상하며, 비료·농약값도 제멋대로 정한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가격도 함께 올리고 부동산중개수수료도, 중국 음식가격도 같이 올려 받는다. 몇몇 동종업종이 서로 짜고 입만 맞추면 가격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담합하는 것이다.

담합(談合)은 2인 이상의 사업자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결정되어야할 판매·입찰가격, 생산량 등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어로는 사업자 단체·모임을 뜻하는 카르텔(cartel)이 전세계 공통어로 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짬짜미'로 통한다. 13세기 초 베네치아 상인들이 십자군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 동방무역의 패권을 거머쥔 것이 담합 역사의 시작이다.

담합은 다른 사람이 가져야할 이득을 취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를 좀 먹는 독버섯이다. 때문에 담합의 피해를 막기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1215년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이 담합을 막기위한 최초의 법이다. 미국에서는 1890년 '셔먼 트러스트법'이 반담합법의 효시다. 당시 록펠러, 카네기 등 석유와 철강 재벌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상품가격을 멋대로 올리는 것을 막기위해서다.

우리나라는 1981년 독점 규제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심의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족됐다. 그후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을 보면, 모든 산업분야에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셀수 없을 만큼 많아 '담합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격담합의 사례는 놀랄정도다. 제약회사의 약값에서부터 금융자동화기기, 운전학원 수강료, 주방세제, 밀가루, 단무지는 물론 농업용 모판 흙, 필름, 고철, 나사, 졸업앨범, 교통단속카메라, 신용평가사들의 수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성행하고 있다.

담합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해온 곳은 비료업계다. 정유업계의 담합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됐다. 공정위가 2010년 LPG 정유사 담합으로 6천689억원을 부과한 것이 단일사건으로 최대 과징금을 매긴 사례로 꼽힌다.

최근 공정위가 양도성예금증서(CD) 담합여부 조사를 벌이면서 국민들과 소비자단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또 농약값과 종이값 담합에 이어 최근 기름값이 2주만에 70∼100원 가까이 대폭 올라 기름값 담합 의혹이 일고 있다.

담합이 성행하는 이유는 경제 독과점 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다. 독과점이 심할수록 몇몇 기업만 서로 짜도 '짬짜미'가 쉽기 때문이다. 또 유난히 모임을 좋아하는 문화때문에 모임이 담합의 창구역할을 한다. 가진자들끼리, 비슷한 업종끼리, 대기업끼리 가격 담합에 나선다. 탐욕의 결과다.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의 처벌도 담합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미국은 담합을 악질적인 반사회적 범죄로 간주해 담합을 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담합에 가담한 임원에게 징역형을 내린다. 유럽연합은 해당 기업의 전년도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이나 과징금을 물린다. 반면 한국은 전체 매출액이 아닌 담합과 관련된 매출액의 10%까지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적발되고 받는 처벌(과징금)보다 담합을 해서 얻는 이득이 많다보니 담합이 되풀이되는 구조다.

사회 전반에 뿌리깊은 담합을 뿌리뽑지 않고서는 '경제민주화'는 요원하다. 가격 담합이 성행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담합행위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갈취해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끼리끼리 담합해 도둑질하는 것은 백성의 숨을 끊는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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