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박상연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김 씨의 아들은 대학 4년을 졸업하고 취직이 안되어 집에 틀어박혀 있은지 벌써 6개월째다. 곳곳의 원서 쓰기에도 지쳐있다. 저녁 밥상 앞에 아버지와 아들은 힘없이 마주앉아 있다. 그리고는 별로 말없이 밥만 먹는다". "재취업을 위해 어느 공장에 잡일이라고 해보겠다고 원서를 내러 간 50대 가장 김 씨는 그 잘난 허드렛일에도 경쟁자가 수십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듣고 창구에서부터 단념하고 되돌아선다. 김 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과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존다. 그의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워 보인다".

얼마전 한 정당이 '50대 실직 가장과 청년백수 아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이색 논평의 가상 스토리다.

베이비붐 세대(1958년∼63년생)의 본격적인 은퇴로 부자(父子)가 동시 실업시대가 된 아픈 현실을 묘사한 것이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16%인 72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는 자식농사가 곧 노후대책이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부양의 의무는 있으나 권리가 없는 세대들이다. 가난속에서 많은 형제자매로 태어나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고, 직장에서는 거의 24시간 일에 매달려야하는 대체로 '저녁이 없는 삶'이었다.

부모 효도관광 보내드리고 자녀들 배낭여행 떠나 보내며, '부모 챙기랴, 자식 뒷바라지 하랴' 자신들의 노후 준비는 엄두도 못냈다.

시대가 변해 은퇴가 앞당겨지다 보니 달랑 남아있는 것이라곤 집 한채 뿐인 하우스푸어다. 퇴직금은 자녀교육 뒷바라지 하느라 중간 정산해서 다 써버렸다. 노년에 적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은 월 225만원 정도라는데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고작 45만8천원.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음식점, 호프집, 빵집, 치킨집, 편의점 등 생계형 자영업뿐이다.

은퇴후 너도나도 자영업이 뛰어들어 보니 경험도 없고, 경쟁도 치열해 절반 이상이 3년도 못버티고 문을 닫는다.

자영업자의 평균 월소득은 150만원 이하로, 월세와 관리비를 내기도 벅찬 수준이다.

그나마 목돈이 있는 은퇴자들은 원룸이나 상가에 투자를 한다.

이 마저도 경기가 나빠지다보니 주로 투자했던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이 부실화되고 있다. 상가 대출 가운데 1/4 가량은 상가를 팔아도 대출금을 못갚는 '깡통대출'이다.

조기 은퇴자들은 일거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다 생계형 창업에 손을 댄 후 폐업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화상이다.

때마침 정부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회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 중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은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고용주에게 요구할 권리를 50세 이상 근로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주가 이를 받아들일지 실효성이 의문이다. '노후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도 개인 차원의 노후설계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 지원이 고작이다.

은퇴후 창업을 돕기위한 인터넷 상권정보 사이트 강화, 귀농귀촌 지원 확대 등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의 재탕 수준이다.

우리나라 은퇴 연령은 평균 53세. 베이비부머의 중간 연령인 올해 나이 53세는 평균 83세까지 생존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 30년을 더 살아야한다는 얘기다.

일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상황이다. 정년 연장을 포함, 베이비부머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상의 복지정책이다.

50대 실직 가장 문제와 더불어 청년실업 문제까지 '두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베이비붐 세대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실제 현실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은 TV개콘에서 처럼 편안하고 느긋하게 먹을 것에 대한 욕망으로 즐거워하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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