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박상연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조선 말 사회가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워지자 오늘날의 대자보인 벽서(壁書)와 쾌서(掛書)가 횡행했다. 왕조가 멸망한다거나 큰 변란이 닥칠 것이니 빨리 피난하라는 내용이 많았다. 벽서와 쾌서는 조선 중엽이후 삼정(三政)이 문란하고 세도정치가 극심한 혼란을 틈탄 시기에 극에 달했다. 이 글은 목격자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고, 그 전파과정에서 변형·왜곡되기 일쑤였지만 사람들은 무작정 믿었다. 엄한 벌로 다스렸지만 익명으로 벽에 부착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쾌서는 조정에 불만과 불평을 가진 백성들에 의해 민심의 선동매체로 이용되어 왔으며, 오늘날 유언비어의 원천이 되었다.

요즘 조선시대 벽서와 같은 정체불명의 괴담이 인터넷을 통해 넘쳐나고 있다. 괴담은 정보독점이 강하고 소통이 잘 안되는 시대일수록 많이 나도는 게 특징이지만, 오히려 정보가 공유되는 인터넷 시대에 더 극성이다.

'중국인 인육데이 괴담'은 듣기만해도 끔찍하다. 온라인 게시판과 트위터에 '10월10일 쌍십절은 인육을 먹는날'이라는 괴담과 잔인한 영상이 담긴 동영상이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이 동영상은 수원에서 발생한 조선족 출신 오원춘 사건의 연장선에서 출발한다. '인육 괴담'은 '여학생 납치사건을 주의해달라'는 안내문이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실인양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마취제를 이용해 택시 승객의 장기를 적출해 판매한다는 '가짜 택시 괴담'에서 부터, 할머니가 버스에서 여학생을 유인, 납치해 장기를 적출한다는 '할머니 괴담'에 이르기까지 허무맹랑한 괴담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괴담은 전과 25범인 최갑복의 유치장 탈주 사건과 맞물리면서 확대재생산돼 밤길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급기야 경찰이 택시루머, 할머니 괴담 등 SNS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며 루머 단속 및 유포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괴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증평지역에서는 '성폭행 괴담'이 떠돌고 있다. 내용은 증평읍의 한 등산로에서 등산을 하던 여성이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괴소문이다. 이 괴소문은 청소년과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청주권까지 번지면서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경찰은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라며, 최근 성폭행 사건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누군가 만들어낸 괴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청주지역 A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늦은 밤 납치돼 며칠째 학교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납치 괴담'은 물론 모 학교의 '집단 성폭행 괴담' 소문도 나돌아 교육당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괴담이 나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근거없는 흑색선전이 소문을 타고 괴담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원장의 '여인 낙태설' '음대녀 관계'와 박근혜 후보의 '숨겨진 아들' '목사와의 사적인 관계'가 그 것이다.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일부 언론이 실체가 없는 정치인들의 괴담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근거없는 괴담은 사회혼란과 불안을 초래하는 독버섯이나 다름없다. 악성 루머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사회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괴담은 믿든 안믿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순간 더 파급력이 커지는 습성이 있다. 일단 괴소문이 퍼지면 소멸시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괴담은 퍼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도청도설(道聽道說)은 덕을 저버리는 일이다"고 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속담처럼 말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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