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경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가 선거의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외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구호는 유명하다. 빌 클린턴은 이 구호를 앞세워 재선에 나선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말, 2012년 대선을 겨냥해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 제목은 '다시 일터로(Back to the Work-진짜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다. 글로벌 경제불안으로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은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이 정체성과 정책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른바 '슬로건'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발표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를 구호로 내걸었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됩니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귀에 솔깃한 선거 구호는 없다. 오히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 고문의 '저녁있는 삶'이 국민적인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슬로건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지 않는 것은 공약과 무관치 않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의 공약 차별화가 없다는 평가다. 박 후보는 국민행복을 위한 3대 과제로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제시했다. 문 후보 역시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 새정치, 평화공존' 등 5가지를 제시했다. 안 후보가 시대 과제로 제시한 '정의, 복지, 평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뜨거운 감자'인 재벌개혁의 방법론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무상보육이나 반값등록금에 대한 공약도 비슷하고, 남북문제 또한 세 후보 모두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은 보수·진보 진영이나 무소속이나 모두 정체성과 정책에서 별다른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어 선거에서 정책이 실종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후보들 모두가 '경제민주화·복지'를 앞세워 국민행복을 외치고 있지만, 국민들의 인식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성장률 급락과 국민행복' 보고서에 나타난 설문조사를 보면, 차기 정부가 국민의 행복감 제고를 위해 실천해야할 최우선 과제로 '물가안정(38.4%)'과 '일자리 증대(24.8%)'를 꼽았다. 뜬구름 잡기식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피부와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이지만, 체감물가 상승률은 8.2%였다.

글로벌 이상기후로 인한 국제 곡물가 급등이 예상되고 있어 물가불안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일자리는 더욱 참담하다. 선거때마다 일자리 창출 공약을 발표하지만 공약(空約)이 되고 만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신화'는 끝난지 오래다. 그 후유증은 양극화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 자영업자, 골목상권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청년실업은 극에 달하고 있다. 기존 방식의 대기업 성장 위주 정책은 일자리 해결에 한계를 말해준다.

사실 일자리가 최상의 복지정책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견고한 성장, 청년들의 창업, 공동체문화인 협동조합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선에서 후보들이 거창한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외쳐봐야 당장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12월 대선의 핵심 쟁점은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실업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누가 더 확실하게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올 대선 구호는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가 더더욱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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