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진천 만뢰산 … 탁트인 풍광에 가족산행 '인기' 통일대탑 보탑사도 둘러볼만

전국 200 명산으로 꼽히는 진천군 백곡면 만뢰산은 곳곳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해발 611m로 진천에서 가장 높은 명산으로, 천안시 병천면과 경계하고 옛 지명으로는 만노산, 만뢰산, 금물노산 또는 이흘산이라 불렸다.

만뢰산의 남쪽으로 지랑마을에는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가 있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령산이 있다. 만뢰산 남서쪽 능선 아래 통일대탑 보탑사가 있으며 북쪽 뒷편은 백곡면 대문리와 경계하고 있다.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에는 재실과 유허비, 비각 등이 있다.

태실은 태어날때 나온 태를 따로 보관한 시설을 말한다. 김유신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했으며,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 축조의 형식을 가진 것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흥무왕 김유신 장군은 김서현 장군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신몽(神夢-화성과 토성 두 별이 내려오는 꿈과 금갑옷을 입은 옥동자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얻은 후, 잉태 20개월만에 태어났으니 이때가 신라 진평왕 17년 서기 595년이다.



태실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보탑사는 조계종 비구니들이 수행 정진하는 사찰로 1996년 지어졌다.

보탑사는 야생화와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잘 꾸며진 정원을 연상케 한다.

그 한 가운데 황룡사 9층 목탑과 유사한 구조의 3층 목탑이 우뚝 세워져 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나 화순 쌍봉사의 3층목탑과 달리 보탑사 3층 목탑은 내부을 올라갈 수 있어 이채롭다.

1층 사방불에는 동서남북 각각의 부처님들이 모셔져있어 중생의 구원과 나라의 통일을 기원하고 있다. 2층에 있는 법보전에는 8만대장경을 모신 윤장대가 있고 사면의 벽에는 한글법화경이 석경으로 모셔져있다. 3층탑의 꼭대기에는 미륵삼존불을 모신 미륵전이 있다.

보탑사 오른쪽의 부처님 열반상을 모신 적조당에는 와불이 옆으로 길게 누워있어 눈길을 끈다.

산신각에서 암반 약수를 한 잔 마시고 만뢰산을 오르기전 지나쳐선 안될 국가지정 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백비(연곡리사지 석비)다.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13㎝이다.

귀부와 이수, 비신을 갖춘 완형의 석비로 각부의 조각이 뛰어난데 단지 비문이 새겨지지 않아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도 연곡리사지의 사적비가 아니면 승려의 탑비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비를 받고 있는 귀부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조각이 정교하여 전체적으로 단아한 인상을 준다. 거북의 머리는 앞부분이 파손되었으나 용머리로 입을 약간 벌리고 있고 얼굴 옆으로 비늘이 붙어 있다. 구갑이 새겨진 등의 양감이 팽팽하며 발톱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비신을 받는 받침에 새견진 복판연화문은 잎이 작으면서도 양감이 있어 아름답다. 비신은 매끄럽게 닦여져 있으며 글이 새겨지지 않은 이유를 군 수 없다. 이수는 용이 사실적으로 깊게 조각되어 우수한 기법을 보이는데 이수의 중앙에 마련한 제액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다.

비선골의 백비를 옆으로 만뢰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2월초 추운 날씨지만 몇몇 나무들은 겨울눈을 틔우고 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계곡엔 얼음이 녹아내리며 흥겨운 물소리를 내고 있다.

등에 약간의 땀이 날 정도로 20여분 오르다보면 평평한 산길로 이어진다.

정상까지의 산길은 그리 가파르지않다.

제법 산을 타는 등산객에겐 마을 뒷동산이란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족 산행에 나선 이들의 모습이 더욱 정겹기만 하다.

능선에서 맞는 겨울 바람이 제법 쌀쌀하지만 겨울철만 아니면 제법 시원할 것 같은 생각이다. 탁 트인 풍광도 제법이다.

한시간여 오르다보면 정상이다.

넓직한 풀밭이 있어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는 일행들이 제법 많다.

하산길도 오르는 길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평탄하다.

이곳에는 신라때 쌓았다는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걷다보면 기와조각도 간혹 눈에 들어온다. 고구려, 백제의 침공을 방어하던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시대 병자호란을 맞아 조감 선생과 유창국 선생이 청나라군을 패퇴시킨 전승지이기도 하다.

1530년(중종25년)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만뢰산성은 김유신 장군의 부친인 김서현 장군이 돌로 이곳에 성을 쌓아 둘레가 3980척(1천300m)로, 성내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쥐의 눈 꼬리 모습에서 유래된 쥐눈이 마을 방향으로 한시간여 내려오면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이 있다.

만뢰산의 생태를 그대로 복원한 공원내 전시장도 한번 가볼만하다.

생태공원에서 올려다보면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활처럼 휜 능선이 어머니의 가슴같기도 하다. 이래 생거진천이라 했는가. 길게 잡아 세시간 남짓한 소박한 산행이었다. 박익규 /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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