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대전·세종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의 가계부채 대책 중 하나인 '국민행복기금'을 두고 말들이 많다. 1천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을 잠재울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정부에 기대어 고의로 대출금을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행복기금의 큰 틀은 잡혔다. 정부는 2월 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연체된 다중채무자의 1억원 이하 채권을 국민행복기금으로 사들여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22조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다중채무자 빚 원금의 50∼70%를 탕감하게 된다고 한다. 전국은행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등록된 채무불이행자 수는 약 123만9천188명. 우리나라 가계부채 1천6조원 중 이들이 떠안고 있는 빚은 157조8천375억원으로 전체의 16%에 달한다.

이같은 서민들의 빚을 덜어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행복기금이 가져올 부작용이다. 벌써부터 국민행복기금 출범을 앞두고 기금의 혜택을 받아보자며 빚을 안 갚고 버티는 채무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대 50%이상 부채를 탕감해주겠다는 소식에 당장 빚을 갚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다.

덩달아 은행권 신용대출 연체율도 점점 증가하고, 법원의 개인신용 파산 신청건수도 늘어나는 걸 보면, 상환을 포기하는 대출금 연체자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돈을 갚아준다는데 서둘러 빚을 갚은 사람이 있겠는가. 이른바 모랄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고 있다. 신용이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과거 2003년 신용카드 대란시 국가가 채무가 구제책을 마련했을 때도 '도덕적 해이'가 나타났다. 당시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빚을 안갚는 채무자가 급증, 궁극적으로 국가의 부담만 커지게 됐다.

국민행복기금은 연체자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로 이어진다. 돈을 빌려준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공적자금에 편승해서 다시 배를 불리는 금융기관들의 행태가 뻔하기 때문이다. 부실채권을 나라에서 인수해주겠다는데 어떤 금융기관이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하겠는가. 이는 이미 외환위기 때 확인된 사실이다.

또 하나는 역차별 논란이다. 근근히 살면서도 어렵게 돈을 모아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이 '바보' 소리를 듣게 된 상황이다. 꼬박꼬박 빚을 갚고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온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수 밖에 없다.

현재 빚을 탕감받을 수 있는 제도는 많다. 개인파산, 개인회생을 비롯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캠코의 재무조정제도 등 다양한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빚을 탕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런데도 국민행복기금을 신설한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 제도의 신중한 운용이 요구되는 명백한 이유다.

더구나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을 탕감받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너무 가난해서 빚조차 얻지못하는 극빈층은 약 362만4천 가구로 추정된다. 이들 저소득층에게는 국민행복기금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같은 금액을 같은 금융기관에서 빌렸는데 간발의 차이 또는 시간차이로 인해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은 "괜히 나만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았나"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국민행복기금이 자칫 불행기금으로 들리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행복기금이 단순히 빚을 갚아주는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용회복을 위해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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