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송역세권 개발에 저당잡힌 사람들

청원군 오송역 인근에서 하우스 농사를 짓는 김연자(58·가명)씨는 이른 아침 농성장에 들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됐다.

보상을 기대하고 대출을 받았던 주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임대를 받아 농사짓는 연자씨도 하우스 철거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예상대로 보상이 이뤄지고 역세권이 개발되면 하우스 이전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지만 자칫 땅이 외지인에게 넘어가기라도 하면 하우스 철거는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개발구역으로 묶여 있는 오송역세권에서는 농가 주택을 지으려 해도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연자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탄보일러와 안방이 하우스 안에 자리 잡은 구조여서 수시로 환기를 시켜주지 않으면 연탄가스에 노출될 수 있다. 연자 씨는 비 오는 날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지난주 수요일, 그날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서둘러 농성장을 빠져나온 연자 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탄보일러부터 살폈다. 문을 열어젖히자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수박농사를 짓는 5동, 오이농사를 짓는 3동을 제외한 나머지 2동이 연자 씨네 안방이고 또 부엌이다.

연자 씨는 편입지주가 아니지만 오송역세권주민대책위 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비닐하우스 파이프 값만 수 천만원에 달하지만 철거되면 고철 값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의 쓴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을 내준 주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연자 씨네 비닐하우스 밭이 다시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창피해서 드러내 놓고 속사정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주민 대부분이 대출을 받았어요. 개발된다고 하니까 대토 구입하려고 담보 대출을 받은 거지. 이자 빚에 허덕이니까 땅을 넘기는 사람도 있고…. 지금 상태면 땅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고 하우스 농사도 장담할 수 없어요."

연자 씨는 편입지주들의 상황이 짐작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보상을 기대하고 대출을 받아 다른 지역에 토지를 구입했지만 개발이 미뤄지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주민대책위 박상범 위원장은 "논을 담보로 1억 8천만원을 대출받은 한 주민은 담보대출 이자만 한 해 900만원을 내고 있다. 5년이면 4천500만원이다"며 "오송역세권 개발에 저당 잡혀 이자 빚만 불린 꼴이 됐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쉬쉬하며 말들을 못해서 그렇지 더 큰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있다"며 "일부 주민들은 이미 자포자기를 하거나 생계가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귀띔했다.

대책위는 그동안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집단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소송에는 '충청북도가 100% 공영개발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가 붙었다. 박상범 위원장은 주민들의 바람이 '지구지정 해제'가 아닌 '개발'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충북개발공사에 1천31억원의 예비비가 있다고 합니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분담하기로 한 51% 이외에 충북도가 나머지 49%를 책임지고 단계적으로 민자 유치를 하면 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충북도의 결단이에요. 주민들이 지구지정 해제를 요구해서 무산된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두 차례의 자문을 통해 주민들은 '집단소송 카드'의 위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눈치였다. 충북도는 일찌감치 관련 판례부터 찾아보고 '문제없음'을 확인했다.

절박한 주민들은 "충북도의 개발의지를 확인하고 싶다"며 진정성 있는 태도를 주문하고 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딱 8일. 장밋빛 청사진은 신기루가 되고 말 것인가. 충북도가 답을 내놓을 차례가 됐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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