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꿈 때문에 선택 … 취업률 잣대 넌센스"

충청권 대학들의 잇단 예술학과 폐과에 따라 지역예술계의 근간이 위협받고 있다.

청주대는 2010년 32년 전통의 무용학과와 한국음악학과를 없앤데 이어 지난주 26년 전통의 회화학과의 폐과를 통보하는 등 예술관련 학과를 잇따라 축소하고 있다. 1년 전에는 서원대가 미술학과, 음악학과, 연극영화과 등 예술대학 전체를 없애는 방침을 밝혔다가 반발로 정원축소로 일단락된 바 있다. 서원대는 2004년 무용과도 폐과했다. 대학측은 취업률이 낮아 폐과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학들의 잇단 예술학과 없애기와 관련, 미술계 지역작가들로부터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 28일 청주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청주대학교 회화학과 폐지논란 좌담회'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인 회화학과 졸업생을 비롯한 청주지역 예술계 인사들이 학교 측의 학과폐지결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신동빈

 



▶김미정 중부매일 기자= 청주대 회화학과는 1987년 신설된뒤 1천명의 예술가들과 예비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이번 회화학과 폐과 결정은 어떤 의미라고 보는가.

▶김복수(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큐레이터·청주대 93학번)=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는 것은 예술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뜻이다. 다른 학과와 통폐합하더라도 회화학과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폐과에 따른 불이익은 재학생들과 지역사회에 돌아갈 것이다. 학과는 한번 없어지면 돌이킬 수 없어 신중해야 한다.

▶우은정(전업작가·청주대 87학번 1회 졸업생)= 회화학과는 취업을 위해 들어오는 학과가 아니다. 꿈이 화가인 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그런 학과에 취업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림 그리지 말고 전부 직업인이 되라는 것과 같다.

▶박진명(전업작가·청주대 91학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100년 후를 내다보고 교육정책을 편다. 회화학과는 이제 26살로 막 뭔가를 시작하려는 단계인데 뿌리를 잘라낸다니 말도 안된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 100년간은 지켜봐달라.

▶이은주(전업작가·청주대 회화학과 동문회장)= 순수예술을 수치로 계산하려는 것은 순수성을 상실한 것이고, 예술의 자존심을 잃은 것이다. '순수예술이 소중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더 깨닫게 됐다.

▶김미정= 비단 회화학과만의 문제가 아닌 대학들의 예술학과 없애기,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박영학(전업작가·청주대 91학번)= 전국의 모든 대학, 모든 학과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 평가하는 교육정책이 가장 큰 문제다. 취업률, 재정기여도, 이탈율 등 5대 지표를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에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국가정책부터 예술인들을 배려해야 한다.

▶박진명= 순수예술은 공기와 같은 존재다. 당장 눈에 안 보이지만 없으면 안되는 존재다. 순수예술이 사라지면 지역예술구조가 무너진다.

▶우은정= 근간이 흔들리면 안된다. 순수학문 다 죽이고 실용학문만 살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김기현(충북민예총 부이사장·서원대 미술교육과 80학번)= 대학이 편의점처럼 획일화돼 똑같은 상품을 만들어내 지역에 맞는 차별화된 특징이 없어지고 있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국가가 원하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지는 것 같다.

▶김미정= 순수학문인 예술을 취업률이라는 수치로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반발이 많은데.

▶김복수= 국·공립미술관과 등록 사립미술관에서 개인전(1회), 그룹전(2회)을 할 경우 취업자로 인정하도록 지난해 개정됐는데 대학생이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하기란 정말 어렵다. 대학측에서는 학생들에게 대학 4년 공부하고 왜 피카소처럼 되지 않았냐고 하는데 피카소가 취업했냐고 되묻고 싶다.

회화학과가 학과평가에서 3년 연속 최하위평가를 받았다고 학교측은 주장하는데, 구체적인 평가자료를 요구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국 대학 순수미술학과 평균 취업률은 34%, 청주대는 30%로 크게 뒤처지지도 않는다. 2년 연속 최하위점수를 받은 공예학과가 내년에는 폐과 대상이 될 것이다.

 

 


▶김미정= 서원대 미술학과는 지난해 폐과 고비를 넘겼는데 1년간 어떻게 달라졌나.

▶김기현= 뷰티학과와 미술학과를 통합해 '융합아트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정원을 줄였다. 살아남았지만 변질된 모습이다. 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폐과위기 1년후 달라진 점은 교수들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모습일까 걱정이다.

▶정상수(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큐레이터·충북대 93학번)= 청주대도 동문교수가 한 명만 있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동문교수는 동문으로서 학과의 역사를 잘 알고 있고, 지역사회와 연계돼있고, 후배이자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 폐과 위기였던 서원대 미술학과도 동문출신 연영애 교수의 역할이 컸다.

▶김미정= 바람직한 대안책은?

▶정상수= 미술대전이나 공모전 수상, 레지던시 참여, 아트페어 참가 등도 자기 전공활동의 연장이기 때문에 취업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박영학 = 교육부 취업통계조사에서 예술학과에 대해 지난해부터 '개인창작활동 실적에 대한 인정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1인 창업자, 프리랜서, 개인창작활동 종사자도 취업자로 분류해 차후 취업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모전 입선경력 인정 등 다른 안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학생들이 엄청난 상처를 받았고, 한편으론, 보이지 않던 예술에 대한 열정도 봤다. 청주대 회화학과를 비롯한 전국의 예술학과가 '지속가능한' 교육을 보장받길 바란다.

▶김기현= 각 대학 예술대간 연대, 지역사회와 협력체제가 필요하다. 우수대학 졸업작품전을 통해 연대의식을 높이고 지역의 미술 인프라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지역예술계를 위해서라도 청주대 회화학과는 존재해야 한다.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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