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대전·세종본부장

대학의 '문(文)사(史)철(哲)'이 위기다.

한남대는 독일어문학과와 철학과 폐과를 추진중이다. 한남대는 취업률과 충원율, 신입생 등록률, 중도탈락률 등 4개 지표를 잣대로 일부 학과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앞서 목원대와 배재대는 독일어문화학과, 프랑스문화학과 등을 모집정지 또는 폐지하는 방안을 담은 학사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전통의 사학인 배재학당을 계승해 단과대 이름까지 '주시경대학', '김소월대학'으로 쓰고 있던 배재대가 국문과를 폐지하고 나선 것이다.

대전대는 지난해 철학과를 폐지해 올해부터 철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상태다. 건양대는 지난 2005년 국문과를 문학영상학과로 바꾼 후 지난해 폐지했다. 청주 서원대도 지난해 국문과를 다른 학과와 통폐합했다.

최근 청주대학교 회화학교 폐지에 재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청주대 회화학과 재학생 80여명은 "피카소가 취업을 한 적이 있느냐"며 예술을 취업률이라는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해 학과를 폐지하기로 한 학교 당국의 결정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각 대학이 일명 '문사철'로 일컫는 인문학과 폐지를 결정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취업률' 때문이다. 교육부가 선정하는 이른바 '부실대학' 기준(취업률 비중20%)에 맞추기 위해서다. 결국 지역대 구조조정의 기준도 취업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학교수들은 "인문학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량적 평가만을 통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각 대학들도 대학의 기본적인 학문연구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육부의 평가라는 엄연한 현실에 무릎꿇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공공부문은 물론 기업 등에 인문학 강좌열기가 시들지 않고 있다. 아직도 TV인문학 강좌가 인기프로그램이다.

또한 기업들은 '기술+인문'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인재 채용과정에서 인문학분야 베스트셀러 28권을 활용한 심층면접을 실시했다.

삼성은 기술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신(新)채용문화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은 통섭형 인재육성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SCSA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을 도입했다. 인문계 전공자를 선발해서 자체 기술교육을 실시한 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채용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인문계 출신들에게 소프트웨어 전문지식을 접목해 스티브잡스와 같은 하이브리드 인재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다.

삼성은 감성기반의 인간중심 기술이 중요해지는 미래에는 인문적인 소양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갖춘 통섭형 인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인문학적 소양과 이공계 지식을 함께 갖춘 인재풀을 두루 갖출 때 창의와 혁신 문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애플은 기술과 인문의 교차점에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주장을 입증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올해 삼성전자와 삼성SDS를 중심으로 200여명을 선발하고 점차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채용형태에 대해 삼성SDS에서만 수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더불어 기업의 인문학 인재 채용 열풍을 타고 인문학 강좌 수강을 원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에 인문을 접목하는 논리는 인물이 필요성(아이디어)를 제공하면 기술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구조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도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경영인들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인문학 독서를 통해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전 '대한민국 과학기술 연차대회' 기조 강연자로 나선 윤덕용 포스텍(포항공과대학) 부이사장은 '한국 이공계 학생의 인문 교육'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뼈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공학박사이자 과학기술원장까지 지낸 윤 부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공학교육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공계 학생들도 고전 읽기와 같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 실태를 비교하며 미국은 이공계 학부 과정의 25%가 인문·예술·사회과학인데 비해 우리는 미국 이공계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대학의 현실은 어떤가. 만약 대학에서 인문학이 없어진다면 학생들의 취업의 기회가 늘어나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