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필자는 과거 오랫동안 대기업카드사 본사 법무팀에서 근무하며 카드사에 제기되는 집단소송 등을 직접 담당한 바 있다.

신용카드 회사는 일반인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양의 빅데이터를 일정한 명령에 의해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데이터 처리의 과실에 따른 문제에서 발생하는 소송은 대부분 집단소송이 될 수밖에 없고, 집단소송은 그 특성상 소가가 크고 업무가 매우 복잡하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필자가 비교적 급여가 높고 복지혜택이 좋은 대기업 계열 신용카드사를 그만둔 이유중 하나도 집단소송이 주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하다.

신용카드 회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다. 모 카드사에서 고객의 소비성향을 분석하여 그가 방문하는 곳에 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개인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한 적이 있다. 그만큼 카드사가 보유한 개인정보는 국내 그 어떤 기관의 그것과 비교하여 양적인 면에서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상상 이상으로 실질적이며 구체적이다. 따라서, 그 유출에 따른 폐해는 감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를테면 생활밀착형 범죄가 가능해진다고 할까?

정보유출에 의한 손해배상은 정보유출로 인한 신용카드 부정사용과 관련한 금전적 손해에 대한 배상과 정보유출 그 자체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따른 손해에 대한 위자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선 금전전 손해 부분에 관해 카드사들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회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정보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없다는 것을 장담하며 그 피해는 모두 카드사에서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는 신용카드 이용약관상 고객에게 과실없는 신용카드 부정사용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카드사가 100% 지도록 되어있다는 점에서 카드사의 기존의 약관상 책임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두 번째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밝혀진 정보유출 범위만으로도 카드회원들은 지금껏 우리가 알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은 물론, 심지어 조직범죄단체가 직업정보, 사용액을 가지고 범행대상을 특정해서 그의 집주소에서 회원이나 그 가족을 납치하여 금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위험은 카드사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한 피해액의 배상문제보다 현존·급박한 위험이고, 이번 정보유출 피해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드회사는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금융사 전화 마케팅이 전면 금지하여 정보유출에 따른 2차 피해를 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정상적인 전화 마케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밥줄만 끊어 놓았을 뿐이다. 불법유출된 개인정보가 정상적인 마케팅에 이용될 리 만무하고, 보이스 피싱이 전화마케팅의 모습으로 시도될 리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유출로 인한 후자의 정신적 손해 부분은 아직까지 해결되지도 위자받지도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정보유출 피해자가 이를 카드사에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한 그러한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 인터넷 업체에서 주민번호 전화번호 등의 개인 식별정보가 유출돼 제기된 소송에서 법원은 인당 각 20만원을 위자료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므로 카드사에서는 향후 재기될 집단소송에서 지불해야할 위자료를 유출 1건당 20만원으로 산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카드사에서 유출된 정보의 질과 양이 인터넷 업체의 간단한 식별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세하고 구체적이어서 인터넷 업체가 물었던 20만원은 이번 사건의 위자료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이는 긁힌 상처에 대한 위자료와 깊게 흉이 진 상처에 대한 위자료가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번 사건으로 '고객님은 당황'하셨다. 아마도 이제는 카드사들이 잠자지 않는 권리자들에 의한 집단소송으로 당황할 차례인 듯 하고, 그것이 손해배상제도가 추구하는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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