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법무부 자문위원

최근 SNS에 성적 소수자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글이 게재되어 전파된 적이 있다. 당연히 그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 갑론을박하였다. 온라인을 가득 메운 누리꾼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상당수 댓글은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하여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이어서 적지않게 놀랐다.

 필자가 가장 놀란 것은 법학지식이 있어 보이는 어떤 분이 헌법적 구조를 가지고 적극적 평등조치에 의한 역차별 이론을 그럴듯하게 펼치며 성소수자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글이 일반 누리꾼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고 있고, 일반적인 법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법적 영역에서는 이미 장애인의 의무고용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혹은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평등조치는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입법하자는 움직임에 역차별 이론을 운운하며 성소수자들에게 조금의 이해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논리의 핵심은 "그들은 다수와 틀리다. 틀린 것은 같이 취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격리해야 한다."였다.

 필자의 생각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인권은 "그들의 삶의 방식(혹은 선택)이 그르다 맞다"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들의 기호의 문제"라고 반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거나, 그들은 우리와 조금 다르므로 다수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성소수자는 그냥 그 자체로 그냥 인간일 뿐이어서 우리나라 헌법이 인정하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인권)을 당연히 누리야 하는 것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대부터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는 것이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자기결정권이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있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호의 한계와 다른 인권과의 조화의 영역내에서 혼인 중의 성관계뿐이 아니라 혼인 외의 성관계도 보호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운명결정권은 자신이 결정한 성에 따라 성전환수술을 할 권리, 자신이 결정한 성에 따라 생활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서 한반 더 나아가 "종래에는 사람의 성을 성염색체와 이에 따른 생식기·성기 등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개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적합하다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태도·성격적 특징 등의 성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으므로,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성전환자의 경우에는 출생시의 성과 현재 법률적으로 평가되는 성이 달라, 성에 관한 호적의 기재가 현재의 진정한 신분관계를 공시하지 못하게 되므로, 현재 법률적으로 평가되는 성, 즉 커밍아웃한 성이 호적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같은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로 이제까지 외관은 여성으로 그러나 법적으로 남성으로 살아가야 했던 트랜스젠더들이 법적으로도 완전히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성적소수자들은 편견 탓에 각종 혐오범죄, 성범죄 등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형사소송절차 어디에도 성소수자들의 특수성을 반영한 적극적인 보호 제도를 찾기가 어렵다. 제도의 선진성과 정교함은 다수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소수의 민감한 사정까지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느냐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형사절차는 선진적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타부시해 왔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그리고, 성소수자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 사회에서 받게 될 차별과 폭력은 위 SNS의 글과 댓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잔혹하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어느 영역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영역에서 다수자로서 소수자에 퍼부은 차별이 다른 영역에서 소수자가 된 본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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