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춤판 벌어진 선상… 안전은 없었다

 

▲ 1층, 나이트 둔갑16일 오전11시에 출항한 유람선 1층에서 승객들이 한복 입은 여성 진행자와 춤을 추고 있다.

 

 

"이 곳이 유람선인지 아니면 나이트클럽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천크루즈호'의 안전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그 많은 희생을 겪고도 그때처럼 '안전'은 바다 깊숙이 수장된 듯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16일 충남 보령의 대천항. 이 곳에는 대천항과 태안 안면도 앞바다 일대를 유람하는 '대천크루즈호'가 하루 3회 운항된다. 승선 인원이 375명에 달하는 '대천크루즈호'는 송도∼월도∼육도∼소도∼추도∼효자도∼여자바위∼남근바위∼사자바위 등 인근 섬 주변을 1시간 30분 동안 둘러보는 일정으로 운항한다.

그러나 이 유람선은 풍경을 구경하는 목적보다는 선상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위험천만한 관광으로 승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 2층, 소주 파티 대천유람선 2층에서 승객들은 미리 준비해온 안주를 꺼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전국 유람선 안전실태점검이 내려진 지 보름 정도가 됐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을 볼모로 이익만 쫓고 있었다. 안전을 외친 총리의 '일갈'이 현장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16일 오전 11시. 취재진은 충남 대천항을 찾아 '대천크루즈호'에 탑승했다. 배가 출발하자 유람선사 측에서 녹음된 안내방송을 틀기 시작했다.

"우리 배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유람선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승무원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위치 설명이나 안전수칙교육, 비상장비 착용 체험 등 승무원 안전교육·시범 등이 강조되고 있으나 그것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 3층, 맥주 타임 유람선 맨꼭대기인 3층에서도 승객들이 간이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 신동빈

 

 


유람선 1층 선실.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선실 입구에는 '노래방, 춤추는 음악으로 시끄러우니 조용히 안내방송을 들으며 여행하실 분은 2층으로 올라가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선실 안은 화려한 조명과 함께 요란스러운 음악으로 가득하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진행자 2명이 승객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신 노래를 열창한다. 선실 앞쪽은 음향·영상을 갖춘 노래방 설비와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진행자들의 노래에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두 명의 승객이 무대로 나오더니 어느새 남녀가 뒤엉켜 춤판으로 변한다.

선실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에서는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술판이 한창이다. 유람선인지 술집인지 헷갈릴 정도다. 순수하게 관광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대전에서 왔다는 김지숙(42·여)씨는 "바닷바람도 쐬고 보령의 주변 섬 풍경을 보기 위해 아침에 이곳을 찾았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애들 보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조윤선(30·경기 안산시)씨도 "세월호 참사가 1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모습은 보는 그대로가 아니냐"며 "이런 것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준 당국이 한심하다"고 혀를 찼다.

유람선 2층도 1층보다는 덜하지만, 일부 승객은 미리 준비해온 술과 안주를 꺼내 자리를 잡고 마시기 시작한다. 술에 취한 승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음주를 즐기는 데 여념이 없다.

유람선 맨꼭대기인 3층에는 30여 명의 승객이 주변풍경을 촬영하거나 감상하며,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나마 유람선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출항해 안면도 일대를 둘러보는 대천 유람선이 선내에서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일명 '선상나이트'를 운영하고 있어 승객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 신동빈

 

 


하지만 이 곳도 음주를 즐기기는 마찬가지. 또 안전울타리를 넘어서 위험하게 사진을 찍거나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승객도 있었다. 이를 통제하는 등 안전을 담당한 승무원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3층은 이동식 간이의자를 마구잡이로 설치해 어느 곳보다도 승객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었다. 그나마 안전그물망 울타리 맨아래 30cm 정도 높이로 설치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정도다.

이날 취재진이 1시간 30분 동안 탄 '대천크루즈호'는 작은 풍랑에도 '휘청휘청' 언제 좌초될지 모르는 위험을 가득 안고 있었다.

한편 보령시는 '대천크루즈호'를 관광진흥법에 따라 허가된 유람선으로,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의해 술을 팔 수 있도록 시설업 등록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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