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충북 상생 물줄기 미호천 공동벨트 - 2.세종·청주 어떻게 살았나
세종·충북 상생 물줄기 미호천 공동벨트 - 2.세종·청주 어떻게 살았나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5.08.24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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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했던 100년 인연, 역사·문화 유전자 通했다
청주시 신봉동 앞 무심천 농로를 따라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통학하는 장면

세종특별자치시로 출범한 옛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유지들은 50여년 전 '청주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 지역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고 충북 편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조치원읍 기득권층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청주와의 행정구역 분할·합병은 결국 2012년 특별자치시 출범과 함께 옛 청원군 부용면(부강면)의 세종시 편입으로 결론이 났다. 진통은 컸다. 하지만 충북은 세종시와 연계한 미래비전을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조치원과 청주는 이미 100년 전 큰 인연을 맺었다.

청주 옥산면 주민들은 미호천 모래를 파 건축용 벽돌을 찍었다. 모래를 실은 우마차가 미호천을 건너고 있다.

충북 도청 소재지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한 것은 충남 조치원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조치원에 역이 설치되자 청주는 충북 육상 물류의 중심이 됐다. 결국 1908년 충주에 있던 관찰사가 청주로 이전했다.

충북의 대표적 사학이자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청석학원(옛 대성학원)을 설립한 故 김원근 선생과 학원의 모태 역할을 했던 대성보통학교 설립자 서창수 선생 역시 조치원 출신이다.

미호천과 금강이 광역단위 행정구역을 갈랐지만, 충북과 세종은 인구·토지 할애와 행정구역 편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정도로 '벽'이 없었다. 시·도간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와 상생, 경쟁을 함께 한 역사와 문화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호천 둔치에 조성된 미루나무 숲은 청주와 조치원 주민들이 즐겨찾는 소풍 장소였다. / 김운기 사진연구소장 제공

'행정'은 공식 교류가 없었지만, 양 지역 주민들은 청주와 조치원을 연결하는 36번 국도와 경부선 조치원역, 미호천과 금강을 매개로 울타리 없이 살았다.

세종과 청주·충북의 인사들은 양 지역 '과거 100년'에 대한 공감대를 토대로 '미래 100년'을 논의하자는 점에 공감했다.

황우성 세종시 향토사연구소장은 "과거 100년 역사와 청주와 세종의 미래에 놓인 현안을 고려하면 한쪽이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소장은 "문의면과 부용면, 현도면은 금강과 미호천을 마주보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지 않았냐"며 "조치원 시장과 청주 육거리 시장을 양 지역 주민들이 편리한 대로 오갔고, 60년대 이후에는 조치원 학생들이 청주권 학교를 다니는 게 일반적일 정도로 문턱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세종시 출범 이후 충북과 청주는 상생할 일이 더 많아졌다"고 강조하고 "제2경부고속도로, 수도권 전철, 청주공항 발전을 위한 '윈-윈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과거 문화와 상권, 교육 등 향토문화를 공유했던 것처럼 충남과 세종, 충북은 함께 가야 한다"며 "광역단체장들이 다소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협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종율(81) 세종특별자치시 노인회장은 "조치원읍 유지들이 충북 편입 운동을 추진했을 정도로 양 지역은 벽이 없는 사이"라며 "미호천과 지류 조천을 활용해 '문화·체육·생태' 개념을 갖춘 '내륙의 호반도시'를 만드는 데 지혜를 모으자"고 강조했다. 한 회장은 "공직생활을 시작했던 60년대 초반에는 현도·부용면 주민들이 밤이면 강을 건너 '마실'을 즐기고, 노름도 하며 조치원 사람들과 어울렸다"며 "1960년대 초반 조치원 유지들이 충남만 고집할 게 아니라 충북에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었던 정서적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조치원역이 청주의 관문 역할을 할 수 있어 충북이 집중 투자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 이었다"며 "기득권 세력의 반대 때문에 무산됐지만, 조치원이 첫번째 발전 기회를 상실했던 일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 회장은 "청주 오송과 조치원 사이 조천천과 미호천 양안 수십만평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과 청주 꽃다리에서 세종, 공주, 군산에 이르는 하천을 활용해 생태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문화·생태시설을 조성하면 아름다운 세종시, 아름다운 청주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또 "최근 충북도청에서 열린 전국 노인회 임원 회의에 참석해 유기농엑스포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며 "410개에 달하는 세종시 경로당 회원들이 행사에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방법으로 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성식(63) 청주 육거리시장상인연합회 명예회장은 "70년대, 80년대에는 조치원에서 돈 꽤나 쓸 줄 아는 이들이 청주 도심과 육거리를 찾아 유흥과 쇼핑을 즐기곤 했다"며 "한때 의상실을 운영했던 무렵 조치원 손님들의 옷감 고르는 수준이 청주 이상이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양 도시가 상생을 하려면 교통망이 더욱 확충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영수 전 청주문화원장은 "조치원 출신 인사들이 청주와 충북 교육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며 "교육분야와 행정구역 변천사 등을 고려하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청석학원을 설립한 김원근 선생은 1919년 조치원에 연청학원을 설립해 상업교육을 시작했던 인연으로 청주대를 설립했다"며 "연청학원에 이어 1922년 조치원 출신 서창수 선생이 청주향교 인근에 운영했던 사설학원 대성보통학교를 인수했던 게 청석학원의 전신인 대성학원이다. 결국 조치원 출신 두분이 청주에서 '육영의 씨'를 뿌린 셈"이라고 소개했다. 박 전 원장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여 물류 중심지로 부상한 청주가 도청 소재지가 됐고, 한 때 조치원은 청주 편입운동까지 진행됐지 않냐"며 "고속도로가 놓이기 이전 조치원은 청주가 전국과 교류할 수 있는 관문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김운기 사진연구소 소장은 "박 대통령 지시로 조성했던 미호천 미루나무 숲은 1970년대 중반까지 청주, 조치원 사람들이 소풍을 즐겼던 명소였다"며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물(미호천)을 매개로 좋은 방안을 만들면 다시 명소로 가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연수 충북도 청풍명월 21 실천협의회 사무처장은 "역사와 문화, 생태, 도시계획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 양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양 자치단체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팀장 한인섭, 이동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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