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D-1] 패션·불통정치는 국민 얕잡아 보는것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는 말이 있다.

4·13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8일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차 청주·전주를 방문했다. 미주 순방외교에서 귀국한지 불과 이틀만이다.

이날 박 대통령의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빨간색 더블버튼 재킷이었다. 새누리당의 상징색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주는 선거구 4곳 모두 여야 후보 간 예측을 불허하는 초접전 지역이다. 전주에선 농림수산부장관 출신 정치인이 사상 처음으로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선거의 여왕'답게 빨간색 재킷을 곱게 차려입은 박 대통령의 방문은 유권자들에게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광주를 방문해 "(호남이)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배수진(背水陣)을 치겠다는 것이다. 그는 5.18 민주묘지에서 90분간 무릎을 끓기도 했다.

문 전 대표가 벼랑 끝 발언을 한 것은 호남지역의 판세분석 결과 28개 전체 지역구중 18곳 이상에서 국민의당이 더 민주당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텃밭에서 녹색(국민의당 상징색) 바람이 불자 뻣뻣했던 목을 숙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방방문엔 보수신문조차 명백한 선거개입이라며 날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센터를 돌아보며 구본무 LG그룹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문 전 대표에 대해선 야권성향 인사들조차 '구태의연한 퍼포먼스식 이벤트 정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번 총선을 맞는 대통령과 야당 실세의 행보엔 사생결단의 결기(抉氣)가 드러난다.

당연히 이번 총선엔 '정도(正道)'가 실종됐다. 공천절차는 요식행위였다. 각 당의 지역구 대표선수를 뽑을 때부터 공천(公薦)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천(私薦)이 지배했다. 배신과 편법과 야합이 판을 치고 피아(彼我)구분도 애매한 혼란과 혼돈(混沌)의 선거라는 말을 들었다.

역대 총선에서 여야 간, 당내 계파 간, 반목과 대립은 늘 존재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여야가 금도(禁道)를 벗어날 만큼 이번 총선에 집착하는 것은 내년 말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 그리고 미래의 권력간 주도권 싸움이 충돌하는 지점이 이번 총선이다. 그 과정에서 여야는 도저히 보여서는 안되는 추한 민 낮을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여야 양당구조에서 국민의당과 비박무소속연대등 제 3세력의 출현 등으로 다당 구조로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민심의 역풍이 그만큼 거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이 빨간 재킷을 차려입고 접전지를 방문하고 문 전대표가 무릎 끓고 읍소(泣訴)하다시피 한 것은 총선이후 정치지형도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판세로는 대선까지 향후 1년6개월의 정치기상도는 결코 맑지 않다.

여야 간 날카로운 송곳대치가 전망되고 설사 새누리당이 예상 밖으로 선전한다고 해도 잠시 휴전 중이었던 여권내 친박과 비박 전쟁이 재연될 것이 뻔하다. 양당체제에서도 국가적인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호소했던 청와대가 국민의당까지 포함한 다당 체제에선 정치력을 발휘하긴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총선 이후에도 국민들이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여야의 대주주인 청와대와 문재인 전 대표가 '플러스 정치'가 아닌 '마이너스 정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서로 생각이 다를 지라도 화합과 포용으로 힘을 결집시키고 당의 역량을 키워야 하지만 오만과 독선으로 분열을 조장하다보니 경제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혁신과 경제현안이 발이 묶인 채 출구를 못찾고 있다. 이런 정치적인 현실에서 침체된 경제가 회복될 것을 기대하긴 무리다. 기업의 대외경쟁력은 날로 추락하고 한국 경제가 10년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함정'에 빠지고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칠포세대로 전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패션정치, 벼랑끝 정치로 냉담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겠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이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얕잡아 보는 것이다. 이 땅의 보수세력이 쇄신하고 진보세력이 제대로 부활하려면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이 시기에 절실한 리더십은 이견을 조율해 합의를 이뤄가는 조정의 리더십, 분야별 참모와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정치인들이 이번 총선과정을 통해 드러난 국민들의 불만과 욕구와 희망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총선 전보다 총선이후 더욱 험난한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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