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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 중부매일DB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하면 누구나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은 고려 공민왕 21년에 경한(景閑)이라는 승려가 역대 고승들의 게송(偈頌)·법어(法語)등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편찬한 것이다.

핵심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정식 서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지만 흔히 줄여서 직지심체요절이라고 한다.

'직지'의 존재는 동양에서도 변방(邊方)에 위치한 나라 고려가 당시 세계문화의 최선진국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선시대 말에 정작 직지를 눈여겨 본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초대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트로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1907년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가 1911년 드루오 고서 경매장에 내놓은 것을 당대의 부유한 보석상이자 고서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단돈 180프랑(지금 돈 65만원)에 낙찰 받았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다른 한국 책 80종은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1943년 앙리 베베르가 숨지자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현재 도서번호 109번, 기증번호 9832번을 단 채 동양문헌실에 보관돼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독일인 구덴베르크가 1450년 찍은 '45행 성서'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 故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찾아내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박병선 박사가 글자체를 하나하나 분석해 이 책이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하면서 세계최초 금속활자본은 직지가 됐다. 이후 대한민국은 금속활자의 종주국이 됐으며 직지를 발간했던 흥덕사지가 있던 청주는 인쇄문화의 발상지가 됐다.

하지만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직지 원본은 여전히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 세계에 내놓을만한 문화유산이 남의 나라에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를 무척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인 리처드 페닝턴(63)이다.

그는 지난 1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직지코리아' 행사장에서 'Bring Jikji back to Korea! (우리 문화재, 직지를 우리 품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쳐 들어 눈길을 끌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페닝턴은 지난 2013년 직지가 발간된 옛 흥덕사 자리에 세운 청주 고인쇄박물관을 방문한 뒤 직지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 강남역 등 전국을 돌며 벌인 서명 운동에서 지금까지 7천여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외국인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반환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서양인도 사랑하는 직지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면 선조들의 창조적인 문화를 계승하긴 힘들것이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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