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송이버섯 자료사진. /중부매일DB

무더위와 가뭄을 이겨낸 송이버섯이 제철을 맞았다. 가을 초입에 적당한 비가 내려 평년작 이상의 생산이 기대되고 있다고 한다.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미식가들은 솔향을 살짝 품은 특유의 향과 아작아작하게 씹히는 식감의 송이버섯을 떠올리며 군침을 흘릴만한 때이다.

송이과 송이속의 버섯은 소나무와 공생해 낙엽에 몸을 숨겨 자란다.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탓에 그만큼 몸값을 제대로 받는다.

전국 산간지역 곳곳에서 생산되지만, 주산지로 꼽히는 경상북도 양양군과 봉화군, 영덕군, 울진군은 지리적 상표(상호)까지 등록할 정도로 품질을 뽐낸다. 송이축제를 매년 개최하는 경북 봉화군산림조합은 지난 20일 첫 공판을 했다고 한다. 전국 송이버섯 가격의 '잣대'가 되는 봉화 송이는 이날 1등급이 ㎏당 24만2천900원에 거래됐다.

주산지로 꼽히는 경북 영덕군은 군복무 시절이던 30여년 전 병사들이 라면에 송이를 넣어 끓일 정도로 흔했다. 출·퇴근했던 단기사병(방위병)들은 일과시간 이후나 주말·휴일 '송이 지킴이'로 나서 제법 짭짤한 용돈을 벌기도 했다. 영덕군에서 청송군에 이르는 길목 한적하기만한 면 소재지에는 농민들이 송이로 번돈을 노린 '맥주집'들이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애써 번 돈을 다방이며 술집을 드나들며 탕진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던 것도 당시 흔히 오갔던 얘기였다.

충북의 경우 제천과 단양, 괴산지역에서도 송이는 예나 지금이나 제법 생산된다. 30여년전 송이를 지켜야하는 농촌마을은 이장댁에 설치한 방송장비를 활용해 송이 '서리'에 나선 외부 침입자들을 퇴치하기도 했다. 혹여 누군가 서리꾼들이 송이를 건드린 흔적을 발견했다면 나팔형 청색 스피커는 요란한 경고음을 내곤했다. 들녘에 있던 농민들은 방송이 지목한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던 것도 송이를 수확하는 농촌 산간마을에 종종 볼 수 있었던 풍경 이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 송이는 외교수단도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김정일은 첫 정상회담 이후 3톤의 송이버섯을 선물했다. 선물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 4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발 659m 함경북도 칠보산에서 딴 4톤 분량의 송이 500상자를 전달했다. 칠보산 송이는 일본에서 으뜸으로 쳐주는 최상품 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선물한 8도 명품차 등에 대한 답례였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요즘 북한의 송이버섯 얘기는 쏙 들어갔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남북관계를 더없이 냉랭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사드 배치를 결정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그래서 남북 대치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형국이 됐다. 칠보산 송이가 다시 남북교류에 등장할 날이 과연 올까 의구심이 드는 게 요즘 세태이다. / 한인섭 부국장 겸 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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