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법조인을 양성하는 관문이자 신분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사법시험이 결국 2017년부터 폐지 수순을 밟는다.

찬반 논란이 많았지만 헌법재판소는 29일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이같은 결정이 나오자 "유감 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입법부에 기대를 걸고 존치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시생 모임이 기대하는 것처럼 국회에서는 여전히 존치 주장이 있다. 물론 헌재 결정 이전이지만,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 등이 대표발의 한 존치법안 4개가 소위원회에 계류중 이라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수립 이후 판·검사와 변호인을 처음 뽑았던 고등고시는 1949년 12월 1회 합격자(사법과 시험)를 배출한 후 현재와 같은 사법시험이 자리잡은 것은 5.16 군사정변 직후였던 1963년 이었다. 그해 7월 제1회 합격자 25명을 배출해 사법시험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시행에 이르기까지 법조인을 양성하는 유일한 '등용문' 역할을 했다.

멀리갈 것 없이 청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들만해도 숱한 사연도 남겼다. 육거리 시장과 조치원 시장 난전판을 오가며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아들이 사시합격과 검사에 임용된 스토리가 있었다. 충북대 병원 보일러 기사로 일하며 주경야독 끝에 패스한 인간승리형 법조인도 나왔다. 공기업 노조위원장 시절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내친 김에 합격한 현역 로펌대표도 있다.

서울대 2학년 재학시절 '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운동권 학생 강제 군입대 조치와 제적, 노동운동 투신, 늦깍이 사시도전과 합격을 내내 지켜봤던 합격자 어머니를 취재했던 일도 인상적 이었다. 청주시 평동에서 육거리를 오가며 떡장사를 했던 그녀는 아들의 모교 청주고 정문에 합격 플래카드가 언젠가 걸려야 한다는 의지를 한번도 접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의 합격 스토리가 신문에도 나와야 한다며 직접 취재를 요청했을 정도였던 노모의 '억척'은 가장 든든한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시폐지와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합격자 발표 때마다 감동을 자아내곤 했던 '흙수저'들의 스토리는 이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흙수저' 대신 '금수저' 스토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학을 놓고 부정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득권층 법조권력이 대물림되는 음서제도라는 비판도 마찬가지 이다. 정치인이나 지역에서 힘꽤나 쓰는 이들이 자녀들을 꾸겨 넣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당국이 전수조사까지 했던 게 현실이다.

2009년 25개 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된 후 매년 2천명이 졸업한다. 헌재 결정까지 나왔으나, 로스쿨을 바라보는 일반의 눈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인식을 바꾸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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