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60대 택시기사가 운행 도중 사고를 내고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하지만 승객들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짐을 챙겨 현장을 떠났다. 당시 승객들은 골프 여행을 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기사는 인근 건물관리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지난 8월 대전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지난달 30일엔 유사한 사건이 서울에서도 발생했다. 택시기사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면서 사고를 냈는데 차량에 타고 있던 승객이 신고나 응급조치를 하지 않고 사라졌다. 삭막하고 메마른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렇다면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승객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우리사회는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반론도 있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도덕의 영역에 법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화재현장에서 불길을 헤치고 이웃주민을 구하다가 정작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거나 사망한 의인에 대한 보상과 예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같은 사례가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 나온 말이다. 한 유태인이 강도를 만나 부상을 입고 길가에 버려졌다. 하지만 동족인 유태인 제사장이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를 도운 것은 유태인들이 혐오했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이들은 외국인과 이스라엘인의 혼혈인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침을 뱉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다친 유대인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풀었다는 예수의 설교는 유태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진정한 이웃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례다.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률을 통칭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부른다.

일부 선진국에서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형법은 '구조 요청을 받고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도 고의로 구조를 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독일도 '사고 또는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여러 사정에 비춰 기대 가능한 구조를 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엔 '의인'에 대한 예우를 조례로 정한 자치단체도 많다. 충주시는 의사상자를 기리는 추모 표지석을 설치하는 조례가 있으며 서울시의회는 최근 의사자를 추모하는 조형물 설치 근거를 담은 '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2001년 도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고 이수현씨 공로를 기려 최근에 유족에게 '욱일쌍광장'(훈장)을 전하기도 했다.

'착한 사마리아인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것은 한편으로 우리사회가 신뢰와 존중,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사회적인 자본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윤리적인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의 유대감도 낮을 것이다. 반면 누구나 '의인'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사회적 시스템이 안정된 건강한 사회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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