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어제는 문의면 대청호변에서, 오늘은 미원면 옥화9경에서 정처 없는 방랑자처럼 어슬렁거리게 한 것이 바람이고 햇살이며 구름이었다. 인간에게 유목민이라는 원시성이 있다고 했던가. 삶이 고단하고 피곤할 때면 회색도시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험한 세상에서는 놀이와 게으름도 전략이다. 삶의 쉼표가 있고 여백의 미가 있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삶의 본질과 그리움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이다.

배고프고 괴로운 시대에 살아서일까. 심산한 삶에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할 땐 어김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옛 추억과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을 생각한다. 맨발로 시골길을 걸어도 좋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촐랑대도 좋고, 숲길과 실개천을 팔짝거려도 좋다. 자연은 항상 정직했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낯선 이를 두 팔 벌려 맞이했다. 이따금 세월에 지치고 남루한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자연은 돌아온 탕자를 기꺼이 허락했다.

문의 대청호변은 시인의 마을이고 화가들의 보금자리다. 사시사철 쏟아지는 대지의 풍경을 보며 시심에 젖고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대지의 속살을 따라 몸과 마음 부려놓으면 어느새 먹향 가득하고 붓끝이 춤을 춘다. 호수가 산자락에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 터트릴 채비를 한다. 봄의 전령 복수초는 제 몸의 500배나 되는 흙을 비집고 멋진 신세계 구경이 한창이다. 닥나무를 삶고 비비며 물질을 하는 작가와 1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다는 산초나무 젓가락의 비밀의 찾아 나서는 장인의 뒤태가 하나의 풍경이다. 대청호의 사계를 화폭에 담으려는 화가와 찰나의 미학을 즐기는 사진가와 커피를 볶는 여인과 양지바른 곳에 앉아 시집을 꺼내 든 연인의 몸짓 또한 문의를 더욱 빛나게 하는 풍경이다.

호수와 숲과 마을엔 아지랑이가 흰빛으로 순연하다. 북풍한설에 마음까지 얼어있었는데 봄은 한사코 돌아와 뜰에 매화를 피웠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심연을 알 수 없는 아득한 눈빛을 보며 사람의 삶이 저 꽃 한 송이 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이름 모를 마을에서 까치발을 한다. 돌담 너머 보이는 장독대와 마른 감나무와 앵두나무가 호젓하다. 머잖아 붉은 앵두가 실실하면 앵두화채라도 해 먹을 것이고, 봉숭아 채송아 한창이면 악동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장난이라도 할 것이다. 짙은 향기를 품은 연기가 허공을 향해 은유의 꼬리를 물고 가물가물 피어오르니 그리움이 더욱 짙어진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된다고 했던가. 외로움이 깊어지면 수척해진 그림자를 이끌고 한유로운 풍경을 찾아 나선다. 옥화9경은 자연과 세월이 빚은 아름다운 그 자체다. 겨우내 움츠렸던 들판은 만삭의 여인이 몸을 풀 듯 부풀어 오르고 들뜸으로 가득하다. 바람의 현을 타고 일렁이는 갈대의 순정,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교차하며 쉼없이 물길을 만들어 온 은빛 호수는 끝없이 마을을 품고 숲과 계곡을 품으며 설렁설렁 넘어간다.

하늘 높이 솟은 장대한 바위와 차디찬 동굴의 신비로 가득한 청석굴, 구슬처럼 맑음에 용이 살았다는 용소, 달빛과 사람의 마음까지 비춘다는 천경대, 선비들이 시심에 젖었던 옥화대, 비단같은 봉우리 금봉, 천년의 신비로 가득한 금관숲, 전설에 젖고 물살에 젖고 슬픔에 젖는 가마소뿔, 신선이 놀다 가는 신선봉, 비취빛 호수와 붉은 숲의 비밀을 간직한 박대소…. 이처럼 옥화9경은 신화와 전설이 있고 물길따라 숲과 들과 마을이 천년의 비경을 품고 있다. 고단한 시대에 맑고 향기로운 감성을 주는 곳이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누가 그랬던가. 농촌의 풍경 중에 으뜸은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라고. 마음의 현이 흐르는 강물처럼 낭창낭창 반짝인다. 그러니 문 열어라 꽃들아, 트림하는 대지야, 징검다리 악동들아, 춤추는 새들아, 푸른 강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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