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청주시 전경/ 중부매일 DB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맹모삼천지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환경은 한 사람의 인생과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산수가 수려한 곳일수록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고 꿈과 용기와 인내를 자양분 삼으며 자랄 것이다. 암울한 시대나 어려운 환경에서는 이에 대한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의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

나는 세계 3대 광천수로 알려진 초정리에서 태어났다. 톡 쏘고 알싸한 물맛도 좋지만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121일간 머물며 요양을 하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친 곳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초정약수의 명성과 세종대왕 행궁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인근에는 동학혁명과 민족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도 많고 한 평생 한국화의 거목으로 살다 간 사람도 있다. 내가 문학을 전공하고 문화기획과 문화예술로 알곡진 도시를 가꾸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글밭은 풋풋하다. 평생을 물길, 들길, 숲길을 거닐며 대자연과 함께 해 왔기 때문이며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설가 최인훈은 함경도 회령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한 후 장교로 임관했다. 군 목무 중 작가로 등단했는데 '광장'을 비롯해 현실에 대한 갈등과 삶에 대한 고민과 시대의 아픔을 담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과 시대적 특징과 무관치 않다.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은 생의 마지막을 암으로 투병했다. 이 와중에도 UN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가난한 어린이들과 함께 보냈다. 어린 시절 궁핍하게 자랐고 2차 세계대전 속에서 비참한 식량난을 경험하면서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미국의 흑인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결손가정, 성폭행, 인종차별 등의 시대적 아픔을 자신만의 특별한 강점으로 변화시킨 인물이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지리적 상상력을 키웠다고 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지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탐방하면서 다양한 창작 아이템을 얻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베로나에 전해지던 한 여인의 슬픈 전설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했다. 일상의 일탈이야말로 경직된 삶과 사고에서 벗어나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온 몸으로 만나고 다양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평생을 여행자로 살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등 세계적인 명성가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환경의 영향을 받거나 세계를 무대로 한 여행 속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마치 전 세계 화가들이 파리를 사랑한 것처럼 말이다.

이쯤에서 청주의 시공간에 대한 문화지리적 탐사가 필요하다. 15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갈등구조, 그리고 그 아픔과 갈등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민족애와 지혜의 산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국토의 중심이었기에 열린 사고와 포용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고, 정의 앞에서는 엄연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그 역사를 짚어보고 공간의 깊이를 두리번거리자. 청주의 지리적 특성을 살린 인물은 누구인지, 그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탐구하자. 지구촌 유례없는 생명문화의 꽃이 화려하게 피어날 수 있었던 연유는 무엇인지도 찾아야 할 것이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사람들은 종종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이따금 점방에 가기도 하고 사주를 보거나 관상을 본다. 그만큼 생활이 팍팍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인데 운명을 생각하지 전에 나의 삶과 주변의 환경을 두리번거리면 좋겠다. 파도만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볼 것이며,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창조와 도전의 가치로 새 날을 열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