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26일 도심 골목길 속 문화재를 탐방하는 청주야행 '밤드리 노니다가'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주 중앙공원 망선루 앞에서 판소리 공연을 관람하며 늦여름 밤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신동빈

"청주 문화시민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나요?" 얼마 전 청주방송의 교양강좌가 끝나고 필자의 강의를 들었던 어떤 분이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한마디로 대답하기 난감했다. 할 이야기는 많았지만 모두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식상한 대답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청주의 '지역 문화'는 언제나 청주시민이 '판단하고,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민이 직접 담아가는 역량모델로 만들어 낸다면 시민의 판단력에 대한 역량과 요구도 쉽게 담을 수 있겠다. 흔히 지역문화는 시민의 입장에서 필요한 판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분석한 다음, 행사나 학술이나 공연이나 전시나 축제체험의 방식으로 내놓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이제 곧 개막하게 될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세 가지 원칙으로 진행되도록 기획을 했다. 첫째는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생각의 폭'이다. 다음은 '생각의 깊이'이며, 세 번째로 '생각의 넓이'이다. 이 3가지의 관점은 지역문화 기획자의 기본 자질과도 같다. 지역기반의 첫 시도로 11명의 지역 기획자들의 공동참여 형태로 만들어지는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첫 번째 역량인 '생각의 폭'이 문제라면 계속 협소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위주의 생각으로는 협업체계를 이끌고 갈 수 없다. 어떤 현상을 다각도에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문화기획자에 있어 치명적 수치이다. 두 번째 역량인 '생각의 깊이'는 지역의 익숙함에 걸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기획자들 전반에 관한 문제다. 이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개인의 예술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思考)는 두 번째 역량 즉 '생각의 깊이'에서 더딜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역량 즉 '생각의 넓이'는 응용 범위가 매우 크다. 회의 때 남의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것, 미팅에서 1:1로 논의하는 것, 나의 의견을 펼치는 것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능력이다.

이 세 가지 분류는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른 접근법 때문에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생각정리' 역량을 소유하게 되면 '표현력'이라는 새로운 역량 체계와 마주친다. 자료수집과 분석 태도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학문이다. 주제가 주어지면 사고의 폭을 한껏 넓혀서 조사, 분석한 후 점차 정리 및 요약해야한다. 주제에 대한 자신의 최종적인 판단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구조체를 만드는 창의력이다. 정리된 창작물을 다시 스토리(story)로 풀어가는 일. 간단한 플롯(plot)을 구성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며 점차 완전한 내용으로 정리해야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창의력에 있다.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 중부매일 DB

그러나 기획자들은 너무 많은 자료에 매몰되어 버리는 경우가 잦다. 이 경우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수집된 자료만 나열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인다. 반드시 중간 생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핵심들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표류하게 된다. 첨언을 하면 첫 번째 역량인 '생각의 폭'이란 넓은 시야를 갖는 일 즉 국제 감각이다. 그런데 기획자의 첫 번째 역량은 기획의 초반부에 결정된다. 주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경험이 많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기획자라면 주제가 주어진 바로 그 순간 순식간에 주제에 대한 수많은 접근법이 머리 한가득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사실상 뒤에 이어질 모든 과정에 대한 '사고의 폭'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기획자는 결코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알 수 없다. 이 역량은 경험이 많은 사람, 사고가 자유로운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역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기획자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지시를 기다리거나 누군가 대신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이 방법은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으로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을 표류하면서 유사 자료들을 건져 올린 후 그걸 읽으면서 다음 작업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다. 혼자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혼란이 덜하지만 만약 팀으로 작업하는 경우라면 기획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기획의 역량'이기도 하다. 혼자 결정하기 어렵다면 모든 팀원을 모아 접근 방법에 대해 반드시 '브레인스토밍'을 거쳐야한다. 남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나를 변화시키는 것에는 언제나 고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청주의 지역문화가 혁신을 꿈꾸고 혁명을 이루기를 기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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