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너머 들려오는 '삶의 간절함'

보살사

가을의 길목인가. 아침햇살이 맑고 바람은 차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미루나무에 햇살과 바람과 푸른 하늘이 살랑거린다. 나의 삶은 오늘도 어김없이 고단하고 번뇌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할 일이 있기에, 가야할 길이 있기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에,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도 가슴이 뛴다.

찬바람이 불면 마음이 아프고 아리고 슬프다. 혼자 밥을 먹다가도 눈물을 훔친다. 막다른 골목길에 서면 내 마음이 찢어질 듯 요동친다. 치열하게 살아온 내 안의 뒤안길이 처량하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고,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말자고 맹서했건만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마음이 온유한 자에게 영광이 깃든다고 했는데 나는 항상 무언가에 집착한다. 일에 집착하고, 사랑에 집작하고, 잡다한 것들에 집착한다.

보살사

버려야 할 줄 알 때 자연은 아름답게 빛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은 절제된 생각과 생활이 진정한 행복을 준다고 했다. 오두막에서 자연을 벗 삼아 소박하게 살던 모습은 지금도 욕망으로 얼룩진 사람들에게 귀감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집과 독선으로 자신의 업을 방기했는지 부끄럽다.

그래서 오늘은 가까운 산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낙가산 자락의 천년고찰 보살사다. 도시에서 몇 발짝만 옮겨도 천년의 염원이 들려오고, 천년의 자연이 다가오며, 천년의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벗이 되어 반기는데 나는 아직도 헛것에 연연해 있다. 보살사에는 문화재가 많다. 1649년에 그린 보물 1258호 영산회괘불탱, 1703년에 세운 충북유형문화재 65호 오층석탑,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충북유형문화재 23호 석조이불병립상, 충북유형문화재 56호 극락보전이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휘감겨 그 풍경은 더욱 깊고 느리며 여유롭다. 중년의 여인이 극락보전에서 백팔배를 한다. 아픔이 많은 만큼 간절함도 많을 것이다. 굽이굽이 사무친 사연이 얼마나 많을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속절없고 부질없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안심사

청주지역의 사찰은 모두 작지만 뿌리는 깊다. 법주사 말사인 남이면의 안심사는 775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1325년에 원명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의 대웅전은 보물 664호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영산회괘불탱은 국보 제297호로 길이가 7.26m, 폭이 4.72m에 달한다. 1652년에 만들어졌는데 석가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세존사리탑은 충북유형문화재 27호다. 전통기와와 단청과 주련의 기풍이 범상치 않다. 소나무 숲의 정기까지 가세하니 불자의 마음은 엄중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아픔을 치유했을까. 얼마나 많은 염원이 이루어졌을까.

현안사

대청댐이 한 눈에 보이는 현암사는 풍광이 절경이다. 벼랑에 매달린 듯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현암사는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내딛는 일부터 득도의 길이다. 사찰 앞에 커다란 호수가 생길 것이라는 전설과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이곳 구룡산의 기상을 끊기 위해 사찰을 없애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찰 뒤에는 옛 성터가 남아 있으니 사연 많고 아픔 또한 많으며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낸 모습이 강건하고 아름답다.

돌담과 잔디밭과 계단 하나 하나에 구도자의 염원이 담겨 있다. 풍경소리가 가슴을 친다. 새 한 마리가 그 소리에 놀라 음표를 머금고 석양이 끼쳐오는 서쪽 숲으로 날아간다. 한 번 날기 시작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만 뒷걸음질 칠 뿐이다. 왜 풍경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씩 있을까.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언제나 눈뜸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명견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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