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비밀 간직한 보물이자 전설

것대마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마을마다 어르신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이 있고, 마을이 모여 고을과 도시가 만들어졌다. 세월의 온갖 풍상을 견뎌온 어르신나무는 귀하게 대접 받고 있다. 몇 백 년에서 천년 가까이 마을을 지켜 왔기 때문이다. 어르신 나무는 그 동네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다. 어른들의 사랑방이었고, 처녀 총각의 오작교였고, 아이들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제 다 알고 있다. 다만 나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비밀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어르신나무는 마을의 명당을 지키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자리, 햇살 속삭이는 자리, 물길이 지척에 있는 곳마다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밤이 되면 별이 빛난다. 한 여름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풍즐거풍(風櫛擧風)을 즐겼다. 겨울에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던 곳이다. 아랫집 위집 할 것 없이 먹을 것 내오고, 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 기분 좋은 곳이다.

청주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천연기념물도 있고 보호수도 있다. 저마다 진한 삶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나무는 오랜 시간 마을의 속살을 지켜봤으며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함께 성장해 왔다. 북풍한설, 생과 사의 고비가 수없이 많았지만 이 모든 아픔을 견딤으로 이겨냈다. 그래서 어르신나무는 신화와 전설이며 삶의 향기다. 마을의 보물이다.

연제리의 모과나무

오송읍 연제리의 모과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22호다. 나무의 크기가 12.5m, 둘레가 3.7m에 달한다. 모과나무가 500년을 살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고 기적이다. 마을 지명도 모가울인데 밀양박씨의 세거지이며 조선의 유학자 박훈의 유허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세조가 등극하자 서산 류씨 문중의 류윤이 이곳에 은거하며 세조의 부름에 구구한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을 이 모과나무에 비유해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불응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친히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어서를 하사했다. 모과나무 열매의 향기가 그윽해 마을에서는 매년 모과주를 빚었다.

연제리 인근 공북리에는 수령 700년의 천연기념물 제305호 음나무가 있다. 신성한 기운이 서려 있기에 마을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치성을 드린다.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고 집집마다 건강과 복을 가져다주기를 염원하다. 당산나무라고 부른다. 먼 길 나설 때도 기도하고 아픔과 기쁨이 있을 때도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 아이들은 나무와 함께 자란다.

중앙공원 은행나무 압각수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 압각수다. 충북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돼 있으며 수령 900년에 달한다. 은행나무는 잎의 모양과 줄기와 땅이 만나는 부분이 오리발을 닮았다. 그래서 압각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 말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목은 이색 등이 이곳의 감옥에 갇혔는데 마침 대홍수가 나서 압각수에 올라 화를 면했다. 이는 죄가 없음을 하늘이 증명한 것이라 하여 풀어주었다는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명암동 화장사 뒤편에는 가침박달나무군락이 있다. 장미과에 속하는 가침박달나무는 동북아시아에만 자생하는 귀한 활엽수인데 하얀 색의 꽃들이 청순하고 아름답고 향이 은은하다. 수령 100여 년에 달하는 가침박달나무 군락지에서 축제도 열고 비루한 삶의 때를 씻는다. 맑은 향기를 들이 마신다.

저곡리의 회화나무

이밖에도 청주권에는 마을마다 오래된 나무들이 저마다의 신화와 전설과 삶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5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은행리 은행나무는 마을이름의 유래가 될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저곡리의 회화나무는 조선시대 귀한 벼슬을 얻은 사람이 나와야만 심었다는데 이 마을에는 회화나무, 느티나무, 우물, 돌담 등이 호젓하다. 산성 것대마을에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형제처럼 나란히 손잡고 있다.

비밀은 비밀을 지킬 때 아름다운 법이다. 오래된 나무는 저마다 애틋한 사연과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청주권에만 100여 그루의 보호수가 있으니 이만한 스토리텔링이 또 있을까. 마을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돌담을 거닐 것이며 어른신나무 아래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곳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마을의 속살을 훔치면 된다.

글·사진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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