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눈 오는 밤에는 책을 읽는다. 시집을 꺼내어 읽고 에세이집도 뒤적거린다. 철학서를 펼치며 올 한 해 어떻게 살 것인가 번뇌로 뒤척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의 풍경을 본다. 어둠 속에서 흩날리는 눈보라가 더욱 빛난다. 그래서 시인 김광균의 눈은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고, 백석은 쌀랑쌀랑 푹푹 내리며, 기형도는 눈물처럼 내린다고 했다. 고은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하얗게 덮으면서 내리고, 최승호는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겨울 밤, 눈 내리는 밤의 시심은 저마다 다르다. 어디 시인 뿐일까. 무술년 새 해를 맞아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올 한 해를 설계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을 것이다. 하얗게 쏟아지는 눈보라를 보며 희망을, 건강을, 행복을, 돈과 명예를, 사랑을…. 저마다의 소망을 품을 것이다.

눈 오는 밤, 나는 신영복 선생의 <담론>이라는 책을 다시 꺼냈다. 물 흐르듯 펼치는 고전과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에 가장 먼 여행을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라고 했다. 진정한 공부는 갇혀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라며 발 딛고 있는 땅속의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마음, 변화와 창조의 정신을 강조했다. 담론의 시대, 우리에게는 오래된 두 개의 세계 인식틀이 있는데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문사철을 이성훈련 공부, 시서화를 감성훈련 공부라고 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움이 우리의 정신과 삶에 스미고 젖도록 하자는 것이다. 진실이 담겨있는 공부, 창조로 이어지는 공부 말이다.

시가 위대한 것은 짧은 문장속에 거대한 세계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패배의 땅에서 자유로움과 창조적 정서를 읽고, 거친 환경에서 단련된 강인함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고난과 역경은 위대한 성장통이다. 이 밤 먹물을 꾹꾹 놀러 시를 쓰는 사람은 온 몸이 마비되고 피를 토할지라도 새벽닭이 울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가야 할 길이 있다.

신영복 선생은 주역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웅변했다. 주역에는 64개의 괘(卦)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패턴이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최고의 교재이자 탈근대의 사상적 보고(寶庫)라는 것이다. 그리고 똘레랑스와 노마디즘의 실천을 강조했다. 똘레랑스는 관용이고 노마디즘은 인식의 확장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말며 타인과의 관계에 관대하되 분명하게 대할 것, 그리고 지구촌을 무대로 마음껏 상상하고 희망하고 그 모든 것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가 풍부해야 할 것이다.

한비자의 망국론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고, 나라 안의 인재는 쓰지 않고 나라 밖에서 구하며, 나라에서 공을 세운 장수를 내쫓고,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다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고통받는 암울한 시대가 올 것임을 경고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파울로 코엘로의 <연금술사>에서 양치기는 연금술의 기적을 믿고 고난과 역경의 길을 나섰다. 무화과나무 밑에서 보석 상자를 발견하는데 정작 양치기의 손에 넣은 것은 보석이 아니었다. 긴 유랑의 매 순간이 황금의 시간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눈 오는 밤, 한 권의 책을 덮고 상념에 젖는다. 내 앞에 펼쳐질 미지의 세계가 왜 두렵지 않을까만 인생은 매 순간이 도전이며 성찰이자 깨달음이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의 결과 향기로 만들 것인지, 그 길을 자박자박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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