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청주 참도깨비도서관 관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아주 오래 전에 몇 년을 써온 일기를 불태운 적이 있다. 일기 검사를 하던 형이 날마다 똑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하나마나한 반성에 다짐은 왜 하느냐는 식으로 꾸짖으며 자기 보는 앞에서 찢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수건 둘둘 말아 복싱 연습 상대하던 시절이라 굴욕을 참으며 태웠던 기억이 왜 하필 오늘 생각이 났을까. 방법은 나빴으나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기에 그날부터 일기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기라는 게 무엇보다 자신을 속이기 쉬운 장르라 생각한다. 누군가 볼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자연히 남을 의식한 자신의 무의식까지 부여 넣는 것이 아닌가 싶다.

느닷없이 일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느 야당 대표의 사무실에 걸려 있었다는 척당불기 때문이다. 어느 사무실에 가거나 걸려 있었던 사자성어(死者成語)다. 좋은 뜻이야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 사는가 싶어서 얼굴 한 번 보게 되는 말들 앞에 그 야당 대표는 입지전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매이지 않는 사람다워서 아무 말이나 하고 다녀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니 대인배다운 그를 어찌 말릴 수 있으랴. 조금이나마 정의로웠다고 할 수 있었을 때 이력을 자신의 과오를 덮고 촛불혁명으로 바꾸어놓은 판을 다시 빼앗기 위해 무장강도처럼 말하는 척당불기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대가의 글씨를 받는다는 것은 사약을 받듯 경건해지고 마음을 새로 고쳐 잡는 일인 것을 면죄부처럼 걸어놓고 액땜을 하거나 동지팥죽처럼 방어용 치세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교육헌장에 애국가에 고등에 고등 교육을 다 마치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서는 척당불기와 같은 서릿발 같은 삶의 지침마저 자신의 호의호식과 권세를 위해 부적처럼 사용하는 그를 볼 때마다 몸에 전기가 관통하는 듯하다. 척(倜)을 주(倜)로 읽으면 어긋나게 뻗기도 한다더니 잘못 읽고 목에 사레가 든 모양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무수히 찍어 붙였던 '존경하는 유권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잣대를 어물쩡 내리는 것도 척당불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집집마다 정당 사무실마다 걸어놓은 액자들을 불태워야 마땅하다. 집안단속만 잘하면 되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만이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돛이 되어 자신이 가는 길을 보여주는 척당불기가 되어야 한다. 어제까지는 그랬더라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바뀌어야 정치인답다. 눈앞의 권력만을 좇고 푹신하니 오래 가는 정경유착의 소파에 앉으려 하지 말고 떳떳한 길을 만들어야 정치인다운 것이다.

이종수 청주 참도깨비도서관 관장

그런 점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으로 쌓인 일기를 불태워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끊을 수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내로남불식의 척당불기를 막을 수 있다. 스스로 돛이 되어 뒤집히지 않는 주권과 민주의 배가 되어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한 자 한 자에 진실된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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