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청주시 청사 전경 / 중부매일 DB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지나 온 삶은 우리의 미래다. 도시는 거대한 스토리텔링이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도시의 공간과 삶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가 급속도록 진행되면서 자본시장에 빼앗긴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축적된 자본의 결과물이며 욕망의 바벨탑이다.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신속성은 있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을 허기지게 한다. 익명성, 획일성, 무한경쟁과 환경파괴, 긴장과 폭력, 급기야 아름답고 행복하며 건강해야 할 우리의 삶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오늘도 본질을 찾아 나선다. 도시에 삶의 향기, 삶의 여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간의 가치를 중시하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며 생태와 문화와 예술로 풍요로운 도시를 꿈꾼다. 회색도시, 공룡같은 마천루는 당장의 욕망을 채울 수 있어도 내 인생을 복되게 할 수 없다. 사건사고로 얼룩지고 자살과 불안으로 가득하니 도시는 겉과 속이 다르다.

내 고향 청주를 보자. 온통 아파트와 빌딩과 도로와 차들로 넘쳐난다. 청주의 역사와 문화, 청주의 자연과 생태, 청주의 공간과 숨결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맑은 고을 청주'라는 이미지와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 그 많던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속절없이 부수며 달려오지 않았던가. 허망하다.

그런데 청주시청사를 부수겠다고 한다. 부수고 번듯한 새 청사를 짓겠다고 한다. 새 청사를 짓게 되면 깨끗하고 편리할 것이다. 근무환경이 개선되니 일할 맛 날 것이며 시민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렇지만 엄청난 예산이 든다. 접근성이 좋지 않고 주차난과 주변 환경이 복잡해진다. 새 청사도 세월이 지나면 낡고 병들 것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청주의 옛 이름은 주성(舟城)이다. 배가 출항하는 곳이니 꿈과 희망의 고을이다. 그래서 시청을 배 모양으로 지었다. 건물 각 층의 옆면이 배의 난간을 표현하고 있다. 53년 전 건축가 강명구 씨가 설계했다. 청주의 국보 용두사지철당간도 주성의 돛대를 상징한다. 이것만으로도 시청은 문화재급이다.

53년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충북과 청주를 대표하는 행정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다. 시민들의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이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과 삶의 비애를 온 몸으로 견디며 달려왔다. 좋은 날 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말이다. 그 많은 시민들의 애틋함이 절절이 묻어있는 곳이다. 이것만으로도 시청은 청주의 살아있는 역사다.

사람들은 청주를 금속활자 직지의 도시, 기록의 도시, 교육의 도시라고 한다. 직지든 기록이든 교육이든 핵심은 남기는 것이다. 꿈과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유산으로 물려주며 더 큰 세상을 향해 도약하는 것이다. 시청은 53년의 기록이다. 시민들의 삶의 기록이고 행정의 기록이며 도시의 기록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센터를 유치한 정신을 상기하자. 이것만으로도 시청은 우리의 발자취다.

시청주변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육거리시장에서부터 일신여고 양관, 충북도청, 옛 도지사관사, 우리예능원, 성공회성당, 청주대학교, 옛 연초제조창, 내덕동 주교좌성당에 이르기까지 청주의 낮고 느림의 미학, 삶의 애틋함이 담겨 있는 곳이다. 시청 주변에도 오래된 가옥과 매력있는 건물이 얼마나 많던가.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면 청주의 거리, 청주의 정신이 된다. 그래서 시청은 애틋함이고 문화다.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 여섯 가지를 새로운 미래의 조건으로 꼽았다. 이곳은 청주정신을 담은 디자인, 전통과 현대의 조화, 저마다의 꿈과 애환이 담긴 스토리, 시민과 행정의 공감, 청주사람들의 놀이, 더 큰 세상을 향해 돋음과 질주를 허락했던 의미의 중심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담고 새로운 미래를 변주하는 가슴 따뜻한 곳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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