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오늘날 대학은 각종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나 언론기관들은 대학을 수시로 평가한다. 대학평가에는 대학을 자극하여 더욱 분발하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평가가 많고 평가기준마저 들쑥날쑥한 현실에서 이를 준비하는 대학은 대략 난감하다. 대학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의 평가가 되면 이러한 평가는 대학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권력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자기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다. 평가가 권력인 것은 평가자가 하라고 하면 평가대상은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가하는 정부나 언론이 갑이 되어 을인 대학을 지배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평가기관 앞에서 을 노릇을 해야 하는 대학의 현실은 참담하다. 주도권이 대학 밖의 기관에 있으니 대학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는 사업은 엄두도 낼 수 없고 외부에서 제공하는 기준 맞추기에 급급하다. 연구실적을 강조하면 교수들은 밤낮으로 논문 쓰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전임교원이 교양강의를 얼마나 담당하고 있는 지를 측정하는 기준도 있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하루 종일 강의에 매달려야 한다. 취업률을 높이려면 연구와 교육보다 취업 상담을 하고 기업체에 뛰어다니며 밥 사줘가며 제자들의 취업에 앞장서야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등록금 인상률이라는 기준도 있다. 많이 올리면 점수가 깎이고 인하하면 점수가 올라간다. 등록금을 인상하면 수입이 많아지는데 지원금은 적어지고, 인하하면 등록금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원금은 많아진다. 눈 가리고 아웅이자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서로 상충되는 혼란스러운 기준들도 있고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기준도 있다. 그런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려고 하면 기준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평가를 거부할 만한데 대학은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대학의 실권자들은 돈을 벌어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 않고 외부 평가(권력)에 따라야만 한다고 설득한다. 내부의 불만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외부의 비위를 맞춰 돈을 따오는 일에 매진하자고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논의의 장에 올려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면 끝없는 토론이 이어져서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으니 지금은 입을 다물고 따르자고 한다.

돈을 따기 위해 우리는 침묵하고 외부의 기준에 우리 자신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 배를 이끌어갈 사공은 배 안에 있지 않다. 배 밖의 사공이 원격조정으로 배의 진로를 결정한다.

배 밖의 사공이 하나라도 견디기 어려운데 배 밖의 사공이 여럿이라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취업 평가기관은 대학을 교육과 연구기관이 아니라 취업준비기관으로 바꾸라고 한다. 각종 인증평가는 인증을 받으려면 그 대학 중심으로 재편하라고 요구한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면 사공들이 배 밖에 있는 건 분명한데 움직여야 할 대상인 배가 온데 간데 없다. 배 밖에 사공이 많고 배 안의 사공이 제 역할을 못하니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배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평가에 시달린 대학들은 지금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배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라고 한다.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일사불란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이 서로 부딪치는 토론의 장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상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사공이 많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다. 배가 물 위로만 다니는 시기에는 하나의 사공만 있으면 되지만 정해진 틀을 벗어나 항상 새로운 걸 요구하는 시기에는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도 가고 하늘로도 가야한다.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는 가장 먼저 잃어버린 배를 찾아야 한다. 곧 외부의 평가로부터 가급적 자유로운 대학을 되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가 사공임을 주장하면서 우리의 배를 산으로 끌어올리고 하늘로 띄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대학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공이 많아야 (되찾은) 배를 산으로도(하늘로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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