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교감할때 행복… 인생 교훈 배우는 삶의 활력소"

호랑이, 표범 등 맹수들을 관리하는 권혁범 씨는 먹이를 주고 청소하는 1차원적 사육이 아닌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올바른 사육사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저는 단순히 사료를 주고 사육장을 청소하는 사람이 아닌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지난 3일 오전 7시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 소속 권혁범(30) 사육사는 주말에도 아침 일찍부터 동물들 돌보기에 분주했다. 그는 매일 아침 사육장 안을 깨끗이 청소하며 동물들의 새로운 하루를 열어주는 사람이다. 청주동물원에서 맹수사를 관리하며 일본원숭이부터 스라소니, 표범, 호랑이, 곰 등의 사육장을 돌며 동물들의 건강상태와 변의 모습을 꼼꼼히 하는 것의 그의 일과다.

"직지(표범)와 이호(호랑이)는 많은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저를 알아보고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애교를 부릴 때가 있어요. 사육사인 저도 그럴때 마다 정말 깜짝 깜짝 놀라요."

청주동물원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표범 '직지'가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다./신동빈

표범 '직지'와 호랑이 '이호'는 어릴적부터 인공포육으로 인해 사육사의 손에서 길러졌다. 때문에 사나운 맹수성을 가졌음에도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고 잘 따른다.

특히 이들을 담당하고 보살피는 권 씨가 사육장 근처로 다가오면 무서운 맹수가 아닌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을 보일 정도다. 권 씨는 "오늘은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며 철창을 사이에 두고 직지의 이곳 저곳을 쓰다듬는다. 덩치 큰 이호도 그에게만은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아침 인사 나누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사람의 손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의 마음 한켠은 늘 무겁다. '동물들의 야생성이 사라지지는 않을까'하는 그의 걱정때문이다.

"사육사를 잘 따르는 것은 좋지만 동물 자체의 야생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늘 걱정스럽죠. 무엇이 맞고 틀린지에 대한 문제는 아니지만 아직은 저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혁범 사육사가 이른 아침 동물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신동빈

올해로 사육사 3년차가 됐다는 권 사육사. 경력은 짧지만 맹수들을 다루는 그의 행동은 여느 베테랑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다. 경력 많은 사육사들에 비해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동물들과 진실된 소통을 한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권 씨는 동물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많은 점들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작년 여름, 물범이 출산을 했는데 건강이 나빠져 새끼와 격리를 시키려고 했었죠. 근데 새끼를 훔치는 줄 알고 물범이 난리가 난거에요. 그런걸 보면서 동물들의 모성애를 새삼 다시 깨달았어요."

3살된 딸을 두고 있는 초보아빠 권 씨는 동물들의 출산과 육아를 보며 가족의 얼굴을 떠올릴 때가 많다. 동물들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엿보며 그는 생명과 인생의 교훈을 배우고 있었다.

권혁범 사육사가 불곰과 반달가슴곰의 내실을 청소하고 있다./신동빈

"초등학교때 부터 희망직업을 적는 란에 '사육사'만 적혀 있어요. 어릴적부터 제가 유난히 동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 없이 마냥 동물이 좋았다는 권 씨는 사육사가 어릴적부터 유일한 꿈이었다. 특히 그는 동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육사가 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꿈을 키워온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키운 동물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강아지와 고양이부터 병아리, 이구아나, 기러기 등 다양하다. 하지만 키우는 법을 제대로 몰라 애완동물들의 죽음을 여러차례 지켜본 적도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권 씨는 특정 동물들의 취약한 병과 사육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지금은 여느 사육사보다 동물들의 아픔을 먼저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동물들은 사람처럼 아픈 곳을 말할 수도 없지만 행동으로도 티를 내지 않아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고 생존 방식인 거죠."

스라소니 '스라'가 날카로운 눈매로 사육사를 응시하고 있다./신동빈

권 씨가 스라소니 사육장 앞에서 격리돼 있는 스라소니 1마리를 유심히 살펴본다. 얼마 전 눈을 다친 '스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작년 여름부터 안충을 앓고 있다는 스라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그와 아침 인사를 나눈다. 권 씨는 이렇게 매일 아침 동물들이 어디가 불편한지, 먹이는 잘 먹는지 등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관람객들의 잘못된 애정표현으로 동물들이 힘들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마음으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로인해 비만의 우려나 질병유발에 원인이 될 수 있거든요.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람객분들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불곰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신동빈

권 씨는 자신보다 동물들의 건강상태를 더 살뜰히 챙기고 있다. 동물과 함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것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또 다른 가족인 동물은 활력소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가 담당하고 있는 동물이 감기에 걸리거나 아픈 날에는 밤새 사육장 옆을 지킨 적도 많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행복을 넘어 동물들에게 축복을 선물하기 위해 내일도 달릴 것을 다짐했다.

"작년에는 표범사를 증축했고 올해는 스라소니사를 증축 예정이에요. 앞으로도 동물들의 복지와 여건을 위해 쉼없이 노력할겁니다."

권혁범 사육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일과를 시작하고 있다./신동빈
맹수사를 관리하는 권혁범 사육사가 스라소니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기위해 맹수 우리로 들어가고 있다./신동빈
청주동물원 전경/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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