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의 세월, 하늘 따라 뛰놀던 추억

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자란다. 더운 여름에 자란 나이테보다 북풍한설을 딛고 일어선 나이테가 더 촘촘하고 단단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밤하늘의 별은 더욱 빛난다. 시련과 아픔이 많을수록, 방황과 고뇌의 시간이 많을수록 풍미깊은 법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닫게 마련이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불모의 땅에서도 사랑을 경작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완성이란 없다. 실패와 시련이 깃든 미완(未完)이 삶의 참모습이다. 그래서 삶은 자기성찰이며 가능성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공부는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형식이다. 불멸의 밤, 신영복 선생의 '언약'이 내 가슴을 시리고 아프게 한다.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삶이 곧 학교이자 기나긴 여행"라고 했다. 그래서 런던에 인생학교를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문화를 웅변하며 그 가치와 지혜를 공유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추억은 모두 학창시절에 만들어졌다. 책을 읽고 시험을 보며 소풍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했던 그 시절 말이다.

아픔과 시련도 있지만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그날의 추억은 가슴 뛰게 한다. 내 삶의 지적 자양분이자 성찰이며 새로운 돋음을 향한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죽는 날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먹 가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교육으로 성공했다.

옥천읍내의 죽향초등학교는 107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악동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육영수 여사도 이 학교에서 놀았다. 정지용의 시처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이다. 흙에서 자랐으니 그 마음도 흙처럼 구순할 것이다. 파아란 하늘을 따라 뛰어놀던 그날의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새신을 신고 달려보자 팔짝,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여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남자들은 개구멍을 넘나들며 술래잡기를 즐겼다. 학교종이 울리면 운동장에서 흙장난 하던 악동들은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구구단을 외우며 책을 읽고 저마다의 꿈을 키웠다. 저 멀리 개구리 합창소리가 들리면 계곡으로 달려가 가재를 잡고 천렵을 즐겼다. 소풍가던 날의 달달한 추억, 검정고무신을 신고 달리던 운동회의 풍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느티나무로 짜 맞춘 교실 바닥은 매일같이 닦고 칠하고를 반복했다. 아주까리기름을 바르고 초를 칠하면 교실 바닥은 악동들의 얼굴이 비출 정도로 반짝였다. 손발은 검은 때 가득하고 코찔찔이에 눈다래끼까지, 한 겨울에는 온 몸이 부르트는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교실마다 장작난로를 피었다. 양은도시락을 난로위에 올려놓으면 맨 밑에서부터 누룽지가 만들어졌다. 구수한 그 맛, 함께 먹는 우정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육영수도 이곳에서 놀았다. 부농의 딸이었으니 아쉬운 것 없는 유년시절이었겠지만 마음 하나는 참 고왔다. 가난한 친구들을 위해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골목에서, 냇가에서 뛰어 놀았다. 그래서 그는 훗날 모교를 찾아 옛 일을 떠올리며 글을 남겼다. "웃고 뛰놀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죽향초등학교에 가면 옛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옛 건물은 옥천교육역사관으로 꾸몄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보존과 활용의 두 가지 목적을 일구고 있다. 그 옆에는 죽향리사지 3층석탑이 있다. 인근 마을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도 악동들의 벗이다. 소나무처럼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맑고 향기로운 풍경을 담자는 것이다.

'노브이 미르.' 신세계를 뜻하는 러시아 말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다. 멋진 신세계는 그냥 오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거침없는 질문과 성찰과, 알 수 없는 미지를 향한 도전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학교는 그러한 곳이다. 학교가 나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내 삶을 더욱 복되게 하는 곳이다.

어디선가 풍금소리 들려온다. 악동들의 까르르 웃는 풍경이 처마 밑 고드름에 걸려 있다. 수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글·사진 / 변광섭(컬처디자이너,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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