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제천 의림지
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제천 의림지
  • 중부매일
  • 승인 2018.03.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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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삶 그려낸 은빛호수를 비추며…
제천 의림지의 풍광

부농의 집에 탁발승이 찾아왔다. 집 주인은 탐욕스럽고 심술까지 사나웠다. 탁발승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할 것을 청했지만 주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탁발승의 목탁소리가 계속되자 집 주인은 뒤꼍의 두엄에 가서 거름 한 삽을 퍼다 탁발승에게 주었다. 냄새가 진동했다. 탁발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름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머리를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 집 며느리가 쌀독으로 달려갔다. 시아버지 몰래 쌀을 한 바가지 퍼서 탁발승을 뒤쫓아 갔다. "스님, 저희 아버님의 결례를 용서하세요. 제가 쌀을 가져 왔으니 받아 주세요." 스님은 쌀을 받아 넣고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그대의 목숨을 구하였나이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것인데,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세요.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하세요.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을 의심하며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시아버지가 하인을 불러 놓고 쌀통의 쌀을 축낸 범인이 누구냐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며느리가 대답했다. "아버님, 스님이 하도 딱해서 제가 쌀을 퍼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네가 내 제물을 축내는구나. 그러고도 며느리라 할 수 있느냐?" 시아버지는 진노하며 며느리를 광에 가두었다.

의림지 인근에재현된 우륵샘

광에 갇혀 있는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세찬 바람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렸다. 그 때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광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쳤다. 정신없이 달리던 며느리는 순간 멈칫했다. 집에 남아있는 아이들과 남편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탁발승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향해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며느리의 몸이 돌로 변했다. 집이 있던 자리는 푹 꺼지더니 물이 가득 고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자리가 지금의 의림지다. 며느리가 변해서 된 돌은 신라시대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바위라는 연자암이다.

의림지(義林池)는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제천의 고구려 때 이름이 내토현인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명 임지라고도 불리웠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시축하였다는 일설이 있고, 그로부터 700년 뒤에 현감 박의림이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다.

우륵이 차를 마시던 우륵정

의림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몇 차례 수축되었다. 조선 세조 때에는 호서, 영남, 관동 등 3도의 병사들을 동원해 크게 보수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5년간에 걸쳐 3만여 명이 동원돼 대대적인 수축을 했다.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지자 이듬해에 복구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반의 둘레만 2㎞에 달한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한국 고대의 중요한 수리시설이다. 수구(水口)를 옹기(甕器)로 축조하여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노송들이 즐비하고 영호정, 경호루, 우륵정 등의 정자가 있고 수양버들도 한유롭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몸을 낮추어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비유하는 말이다. 인공의 호수라지만 물은 인공의 것이 아니다. 산과 계곡에서 시작된 물은 하나씩 자신의 삿된 욕망을 씻고 이곳에 모였다. 다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이곳에 모여 평온의 안식을 즐긴다. 우륵은 호수의 비경에 취해 어떤 음악을 즐겼을까, 잠시 상념에 젖는다. 삶을 묵상한다.

봄날의 햇살이 눈부시다. 호수는 더욱 여유롭고 봄비에 부풀어 있다. 이미 호수는 문명의 세계에 익숙해 있다.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연인들도 오가고 가족단의 소풍객들로 가득하다. 100세 건강을 약속하듯 걷고 달리며 저마다의 삶을 품는다. 걷기는 사유의 대상이다. 인간의 본능이다. 호수와 숲과 함께하는 걷기는 너무나도 친숙하다.

하여 의림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하나되게 하고 그 관계를 확장하며 그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삶의 신비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증명되는 것이다.

글 / 변광섭(컬처디자이너, 에세이스트)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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