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1948년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이 취임식에서 사용한 뒤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창의는 아니다. 원래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며, 백 달러짜리 지폐에 초상이 실린 벤자민 프랭클린의 정치 만화 중 하나로, 그가 직접 운영했던 신문 '펜실바니아 가제트'에 처음 실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제목은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 20년 뒤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식민지 주민들의 자유를 향한 상징이 되었다. 다른 사람 아닌 이승만이 이 말을 인용했다는 게 좀 어색하다. 독립운동가로서 해외에 망명해 살던 시기, 뭉치게 하기보다는 자주 집단적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시절엔 독재와 부패의 늪에 빠져들어 그 스스로 국론을 분열시키다가 좌절하고 만 때문이다.

이 말은 이제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이 말의 의미가 옳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뭉쳐서 살아남고 흩어져서 죽어 없어진 경우가 수없이 많지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했다. 한결같이 나라세우기의 뜻이 선명하고, 그 깃발 아래 하나 되었을 때 번성했으나 초심을 잃고 지리멸렬해져 권력다툼 패싸움에 빠져 있다 망해버렸다. 이 땅에서 시작된 최초의 나라라 할 수 있는 고조선이 그랬고, 이후 근대 조선왕조의 몰락이 또한 그랬다.

나라의 멸망은 언제나 외적의 침략으로 마감되지만, 외적은 항상 내부의 분열을 통해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이 한결 같은 역사의 교훈이다. 1948년 독립한 신생국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24개국으로 구성된 거대 아랍권의 대립은 살아있는 현실 교훈이다. 인구 겨우 8백만의 이스라엘이 3억3천만의 인구를 거느린 아랍권과 맞서 네 차례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결속이 원천이었다. 온갖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내부 갈등의 골이 깊은 아랍권의 분열된 힘으로는 고립무원의 눈엣가시같은 이스라엘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반도국가 대한민국과 지중해 연안의 약소국 이스라엘은 나라 잃은 설움과 잃었던 나라 다시 세우기의 고단함을 함께 경험한 비극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돌하는'갈등의 도가니'같은 지정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국민들, 특히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의 수난의 역사를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법한 일이지만 도무지 동일시할 수 없는 한 가지 점이 있다. 우리가 되풀이하여 경험해 온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료한 진리를 체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승만처럼, 머리로 알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라를 찾겠다며 풍찬노숙을 마다않던 망명지에서 조차 좌.우가 갈리고 기호파와 서북파가 나뉘어 싸웠다. 파벌은 파벌을 낳아 끝없이 갈리고 나뉘었다. '도둑처럼'찾아든 해방 정국에서도 파쟁은 그칠 줄 몰랐다. 좌우는 여전했고, 중도 좌파도 있고 중도 우파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송진우, 여운형, 김구 등이 모두 동족의 흉탄에 쓰러지고 나라는 결국 갈라지고 말았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해방 63년, 건국 60년. 파쟁의 칼바람은 지금도 스산하다. 이 칼바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선과정에서 "정의는 분노"라고 목청을 높일 때 이미 예고돼 있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이후 밀려나고 쫓겨나고 쇠고랑 찬 채 끌려가는 사람들이 요즘처럼 황사에 꽃잎 날리듯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책 보다 졸리면 개 끌고 산책 다니는 게 일상의 대부분인 퇴직 교수의 안목으로는 암만 생각해도 두 대통령의 잘못이란 게 이전 어느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보다 더할 것도 없는 것만 같은데 부패하고 무능하기가 역대급이어서 감옥에 둘 수 밖에 없는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둔 수치감을 견디라니 가혹하다. 권력만 잡으면 왜 그리도 탐욕스럽고 간교하고 오만해질까, 속상하고 슬프고 한심스럽지만 그 보다 더 걱정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스럽기까지 한 것은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있는 국론 때문이며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있는 갈등 때문이다. 나라 형편이 이만 저만 위태로운 게 아니고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분노의 쌍검무가 그칠 줄 모르는 나라 형편이 가슴 아프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