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시론] 표언복 전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공연장을 향해 나란히 걷고 있다. 2018.04.27. / 뉴시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공연장을 향해 나란히 걷고 있다. 2018.04.27. / 뉴시스

남북 두 최고 지도자가 만나 한반도 평화정책에 관한 논의를 갖고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지난 27일은 가히'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만하다. 이전의 어떤 남북간 합의나 선언들보다도 훨씬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어 제대로 실현만 된다면 통일까지는 몰라도 당장 전쟁 걱정 없는 선린관계를 맺는 데까지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라 안 사람들이 사뭇 기대에 들뜨고 나라 밖 사람들이 잔뜩 관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그게 그리 반갑지가 않다. 단순히 반길 수만도 없는 이유 때문이다. 바로 그날 내 집에 일하러 온 굴삭기 기사는 한마디로 "쇼지 뭐"라며 콧바람을 날렸다. 점심 먹으러 가서 만난 식당 손님들의 반응은 "엊그제까지 핵실험하고 미사일 팡팡 쏘아 올리던 놈들이 갑자기 무슨 꿍꿍이 속이 생겼느냐"는 것이었으며, "돈 깨나 들어가고 쌀 섬 깨나 실어 나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껏 높아진 '무지렁이' 민초들의 현실 인식이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나, 내 회의(懷疑)의 근거는 겨울을 이긴 달맞이꽃 뿌리처럼 깊디깊은 우리 안의 차별의식과 지역감정 때문이다.

결국은 갈라져 서로 다른 체제의 두 나라를 세워 피 흘리며 싸우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지만 남과 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뿌리가 깊다. 옛 삼국시대에는 하삼도(下三道.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기반한 신라와 백제가 동맹을 맺어 북의 고구려와 맞섰고, 남쪽 세력의주도로 이룩된 통일신라 시대에는 북의 민심이, 북쪽 세력의 주도로 건국된 고려시대에는 남의 민심이 사나웠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북지역 사람들은 차별 때문에 분노하고, 관북지역 사람들은 소외 때문에 서러웠다. 서북지역에서는 홍경래가 혁명을 도모하고 관북지역에서는 이징옥과 이시애 등이 새 세상을 그렸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평안도는 300년 이래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었고, 서울 사대부는 이들과 혼인하거나 벗하지 않는다"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내용이다."두만강 유역은 모든 면에서 소외당한 땅이다. 높고 춥고 험하여 생존할 땅으로서도 소외당하였다" 인조(仁祖) 때 온성(穩城)에서 유배 생활을 경험한 시남(市南) 유계(愈棨)가 남긴 글이다. 차별과 소외는 한을 낳고, 한은 풀어야 했으며, 그 한풀이가 차별과 소외를 재생산했다. 나라 잃은 망국민의 신세가 되어서도 남과 북은 갈리었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고 물 밖 이역을 떠돌면서도 남과 북이 갈리어 싸웠다. 민력(民力)을 길러 국권을 회복하겠다며 나선 사람들도 북쪽 사람은 북쪽 사람끼리 모여 '서북학회'를 조직하고, 남쪽 사람은 남쪽 사람끼리 모여 '기호흥학회'를 세워 경쟁했다.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망명길에 오를 때에도 이들은 '서북파'와 '기호파'라는 각기 다른 명패를 차고 있었다. 안창호가 절망하여 백의종군을 자청하며 단결을 호소했으나 무위했다.

인터넷 상에 올라 있는 한 '고딩'의 글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살며 겪어 온 영호남 지역감정으로 인한 상처를 내보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특정 도시 이름만 입에 올려도 "너 ○○도 출신이냐"며 차별하러 들더라니. 교사가 수업 시간에 박근혜를 '박그네'니 '닭그네'라 경멸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대목은 더더욱 참담하다.

남녘의 규모 있는 4년제 대학 교수 직을 포기하고 대전의 한 작은 대학 교수직에 원서를 낸 사람의 사정은 지역감정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본적 제도를 없애고 자동차 번호판에 지역 이름을 지우는 정도로는 '택'도 없을 만큼 고질이 돼버린 지역감정이 동서간에 긴 장마전선처럼 드리워져 걷힐 낌새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과연 남과 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은 가능한 것일까? 동서간 대립보다 훨씬 뿌리 깊은 대립 관계 속에 엄청난 희생을 불러온 전쟁까지 치른 당사자들이 '선언'하나로 그리 쉽게 평화적 상생관계로 돌아설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상호 모순돼 보이는 두 가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여전히 주적관계인 북을 상대함에 섣부른 낭만적 접근방식을 철저히 경계해야 하며, 동시에 저들을 이해하고 얼싸안을 수 있는 우리의 품을 적극적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자칫 저들의 전략에 말려들면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통일에 우선한다. 말만이 아닌 진정한 하나됨을 위해서는 우리 안의 차별의식과 지역감정부터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함께 사는 동.서 간의 화합도 이루지 못하는 처지에 척지고 싸워 온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 그리 쉬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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