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크리에이티브디자이너·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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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한설로 꽁꽁 얼었던 겨울이 가고 만화방창 봄이 오더니 어느덧 여름의 길목입니다. 새싹들은 자신의 몸무게보다 몇 백배 무거운 흙을 비집고 기지개를 켜며 꽃을 피웁니다. 맑고 향기로운 미소, 푸른 기상 가득합니다. 여름을 견디면 달콤한 열매 가득한 가을이 오겠지요.

새벽녘에 아파트 화단을 걷다가 뒤돌아보며 머뭇거렸습니다. 꽃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네요. 순간 울컥했습니다. 얘들아, 나 어쩌란 말이냐. 나는 너희들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언제나 내 곁에서 미소를 건네니 나 어떻게 살란 말이냐. 이처럼 자연은 언제나 내게 용기를 줍니다. 온갖 욕망과 아집으로 얼룩진 삶, 헐렁하고 심드렁한 내 삶의 뒤안길을 어루만져 줍니다.

아카시아 향이 지면 밤꽃 향기가 온 동네를 요동치겠지요. 장미꽃도 입술을 진하게 바르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낼 것이고요. 이처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향기가 되고 숨결이 되며 시가 되고 노래가 됩니다. 저마다의 향기는 모이고 모여 별이 되고 숲이 됩니다. 사랑이 되고 기적이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향기가 만들어집니다.

새벽의 문을 여는 것은 눈부신 햇살이 아닙니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던 어둠이고, 그 어둠 속에서 기침을 하는 새들이며, 바람과 나뭇잎과 꽃들입니다. 이 모든 생명들이 젖 먹던 힘을 다해 새벽의 문을 엽니다. 나 혼자 잘났다고 핏대 세우며 살지만 대지의 합창과 이웃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분투'라고 하지요.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없나요? 삶이 고단하고 미래가 불안하며 되는 일 없다고 투정거리는 내게 어깨를 어루만져줄 사람, 어떤 길로 가야할지 망설일 때 함께 가자며 손 잡아주고 등불이 되어줄 사람, 외로움에 가슴 시리고 아플 때 연인이 되고 길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어서 일어나라며 부추겨 줄 사람 어디 없나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결같은 사람, 삶의 향기 가득한 사람 어디 없나요? 나보다 이웃을 생각하며, 지역과 국가와 인류를 염려하며,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 어디 없나요? 가슴이 떨릴 때 사랑을 하고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다리가 떨릴 때 편안한 휴식처를 찾아야 하고요. AI를 전쟁에 사용하면 재앙이 올 것이고 문화에 사용하면 삶을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열정, 그런 이웃 어디 없나요?

똘레랑스와 노마디즘. 똘레랑스는 관용과 배려와 사랑입니다. 노마디즘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더 넓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질주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화두이자 덕목입니다. 견딤이 쓰임을 만듭니다. 새들은 비바람 부는 날 집을 짓습니다. 축복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적처럼 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어디 없나요? 작은 일 하나에도 혼신을 다하고 떡 하나도 나눠먹는 사람, 사랑을 위해 갈망하고 열망하며 그 두근거림이 결코 가난하지 않는 사람, 슬프고 외로울 때 더욱 그리운 사람, 그래서 언제든지 달려와 내 곁에 있어줄 사람,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어둠을 밝히고 저 먼 곳에 뜬 무지개가 허튼 게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어디 없나요?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은 창을 통해 옵니다. 집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성당에서도, 숲길 들길 골목길에서도 모든 아름다운 풍경은 축복처럼 다가옵니다. 내 삶의 마디와 마디가 되고 추억이 되며 삶의 향기가 됩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할 사람은 더욱 값지고 중요합니다.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 사양합니다. 나 아니면 안된다며 핏대 세우는 사람, 자신의 욕망과 아집으로 얼룩진 사람, 변화와 창조의 새 시대를 읽지 못하는 고루한 사람,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사양합니다. 가진 게 없어도 주고 또 주고, 쪼개서 주고, 털어서 주는 사람, 사랑과 낭만과 봉사와 열정과 창조의 바로 그 사람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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