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은하 문화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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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리단길 비스트로에서 밥을 먹고, 이태원에 가서 수제맥주를 마실 거야." A씨는 바쁘다.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맛집, 카페를 찾아 다녀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맛집 초대를 받아 리뷰를 남기기도 한다. 여행을 가도, 사람을 만나도 그녀는 늘 휴대폰 속 SNS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의 직업은 인플루언서다. 인플루언서란 SNS상에서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SNS를 즐기는 편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SNS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여행을 다닐 때나 데이트를 할 때에도 SNS 인기스폿을 참고한다. 독특한 콘셉트로 꾸며진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온 날에는 나도 그곳에 다녀왔다고 인증샷을 올린다. 그런데 애써 찾아간 핫 플레이스가 늘 만족스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교통편도 애매하고, 대기 줄도 길고, 맛도 없고, 서비스마저 좋지 못해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찾아간 것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SNS 인기스폿에 열광하는 것일까? SNS에서 뜨는 인기카페, 맛집을 찾아가는 것은 인플루언서의 라이프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행위다. 미션을 수행하듯 같은 장소에 찾아가 사진을 올림으로서 기쁨을 느낀다. 전문가에 의견에 따르면 사진은 가장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불러일으키고,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요즘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의 성공비결은 간단하다. 시선을 끄는 '사진'이다. 소위 사진 잘 나오는 인증샷이 중요하다. 하얀색 벽에 초록식물, 빈티지한 분위기가 대표적인 예. 사람들은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직접 그곳을 찾아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오픈하는 가게에는 감성적인 공간 인테리어나 사진을 찍을만한 포토존 또는 독특한 모양으로 만든 대표메뉴가 필수다. 예쁘고 멋진 것을 보고 있으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요즘 방송프로그램 중에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동네에 있는 작은 식당을 방문해 문제점을 알려주고, 솔루션을 함께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오랜 전통을 이어왔지만 낙후된 환경 때문에 점점 매출이 감소하는 식당, 요리솜씨는 있지만 식당운영 방법을 잘 몰랐던 식당 등 다양한 케이스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젊은 여자 사장 두 명이 운영하는 원테이블 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 맛 보다는 비주얼을 고려한 예쁜 음식 (사진으로 자랑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백종원 대표에게 몇차례나 혼이 났다.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던 장면이다. 그들은 식당의 '본질'을 잊고 있었다. 뒤늦게 그들이 운영하고 싶은 사업은 요식업이 아닌 공간대여 사업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의 현실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박은하 문화블로거

문득 시장 앞에 있는 우리집 단골집식당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도 넘은 식당이다. 김밥, 칼국수, 비빔밥이 전부인 조촐한 분식집이다. 그곳에는 그럴싸한 포토존도 예쁜공간도 없지만 늘 한결같은 맛으로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식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이다. SNS 인플루언서를 불러 광고를 하기 전에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다.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하고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식당은 밥을 먹는 곳이고, 카페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음식과 음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준비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SNS로 반짝 인기스폿이 된 곳은 그만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다. 기본적인 맛에 독특한 콘셉트가 더해진다면 그곳이야말로 대박예감이다. 우리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하는 식당과 카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함께 늙어가는 단골집이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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