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인류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펜데믹을 통해 많은 전대미문의 변화를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목도하며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고 그럼에도 다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능력도 보았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는 어느 순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사제 간에 교감할 수 있는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교육에서도 학교란 공간과 사제 간 만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펜데믹 이후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커다란 숙제도 남겼다.

숙제는 두 가지다. 학교나 교사가 없는 '언택트' 상황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만일 학교의 존재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방향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의 실효성 문제'와 '교육의 내용 지향성 문제'다. 참고로 여기서 언택트 교육이란 용어는 콩글리쉬이다. 원래는 '난택트(non-tact)', 혹은 '제로 컨택트(zero contact)'이지만 본 내용에서는 우리 사회에 이미 일상적으로 굳어진 언택트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고자 한다.

전자의 문제는 펜데믹을 겪으며 학교가 없어도 원격으로 언택트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았다. 재택근무도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그런 이유겠지만 '정해진 미래'의 저자 조영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오히려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드라마 대장금이 아프리카까지 가는데 6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코로나 시대인 지금 전 세계인들이 오징어 게임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미국 블록버스터가 망하고 한국 드라마가 흥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학교의 존치를 위한 효용가치와 교육의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제 간의 소통 강화다. 그동안 교사와 학생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모든 지식의 전수는 언택트 원격수업으로 중단없이 진행되었다. 결국 인간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없어도 된다는 것. 이런 점에서 사제 간의 직접 만남과 소통은 학교의 존치를 가능하게 할수 있는 핵심이 될 수 있다.

후자는 '인성'과 '창의성 함양' 문제다. 21세기 교육은 인성과 창의성이 키워드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교과부도 이를 교육의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인성교육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선성(善性)'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인 이상', '인간을 위한' 교육이다. 특히 학교 단위의 미시교육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더불어 창의성 교육도 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교육현장에서 사고의 유연성을 어떻게 제고시키느냐는 것이다. 이는 형식적인 교육과정의 손질보다 더 중요하다. 창의성 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유연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창의성 교육의 성패가 갈라질 수 있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교육학자 맥키논(MacKinnon)에 의하면 "창의적인 인간은 매우 개성적이고 그 자신의 정서와 감정표현에 개방적"이라고 했다. 세계를 정복한 몽골의 영웅 칭기스칸도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닦는 자는 흥한다"고 했다. 이렇듯 교육에서 개방성과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통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펜데믹 이후 지금까지와는 달리 학생들의 무한한 사고와 자유로운 활동을 고무시킬 수 있을지는 결국 코로나19를 통해 우리의 교육이 새롭게 돌아봐야 할 과제를 안았다는 의미다. 우리 교육의 방향성, 뉴 노멀(new normal)을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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