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우리 마을 이야기 - 청주 옥산면 군줄마을
도란도란 우리 마을 이야기 - 청주 옥산면 군줄마을
  • 중부매일
  • 승인 2022.07.19 16: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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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넘게 살고 있지만, 공장 많아도 사는 데 지장없어"
청주 옥산면 군줄마을에서 70년넘게 살고 있는 김복순 할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마당 텃밭을 살펴보고 있다. 

청주시 옥산면 덕촌리를 지나 서쪽으로 난 고갯길을 넘어가면 소규모 공장지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신촌리에 있는 군줄마을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은 마을인데 공장이 많은 것에 놀란다.

원래 이곳은 10여 가구 주민들이 조용히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 뒤로는 야트막한 응봉산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천안 병천에서 내려오는 천수천이 흐르고 있다. 30여 년 전에 이 냇물은 맑고 얕게 흘렀다. 사람들은 모래무지나 빠가사리 같은 물고기를 잡아 회로 먹거나 매운탕을 끓이기도 했다.

군줄마을 전경

1980년대 말쯤 내 건너편 마을인 오송읍 호계리에 큰 제지공장이 들어섰다. 이후 웅장한 중장비들이 천수천 바닥을 긁어댔다. 냇가로 내려가던 길은 없어지고 물은 깊어졌다. 군줄마을에도 작은 공장들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최근엔 40여 개 업체에 이르고 있다. 그 틈에서 마을 주민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은 묵묵히 일하고, 주민들은 나름대로 텃밭이며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상전벽해같은 변화 속에 남아있는 둥구나무 하나가 그나마 예전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군줄마을에 위치한 공장 안내 표지판

아침이면 비닐하우스에서 애호박을 키우는 성호(47) 씨의 손길이 바빠지고, 도로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자동차가 밀고 들어온다. 곧바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택배차와 화물차들이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번개같이 다닌다. 공장 근로자들의 식사를 배달해주는 차들도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간다. 생업의 현장이다.

군줄마을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 툰망씨와 단저씨

이 작은 마을에 한국 사람만큼 외국인도 많다. 방글라데시, 몽골, 미얀마,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 흘러 흘러 이곳까지 들어와 소중한 노동을 제공해주고 있다. 공장에는 물론 성호 씨 농장에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길이 닿고 있다. 미얀마 사람 툰망(25)과 단저(25)는 4년 전에 군줄마을에 있는 한 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매달 받는 급여를 거의 다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내란으로 인해 본국 사정이 어수선하다며 가족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제일 높은 지대에서 군줄마을을 내려다보고 사는 김복순(90)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마당 텃밭을 살펴보고 있다. 대문이 열렸기에 살며시 들어가 인사를 하니 반겨주신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 혼자 살고 있다. 연하게 자라난 비름나물을 뜯고 계신다. 비름나물 수북한 자리에 채송화가 섞여 있고 조그만 잎사귀 두세 장 머리에 이고 있는 들깨 모종도 보인다. 어우렁더우렁 함께 살고 있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70년 넘게 여기서 살고 있어. 6남매를 키웠는데 얼마 전에 막내 쌍둥이 아들 둘이 환갑을 지냈어. 증손자들만 해도 20명이 넘어. 다 잘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어." 동네에 공장이 많아서 불편하시겠다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다. "사는 데 별 지장 없어. 오히려 차들도 많이 다니고 길이 훤히 보이니까 생동감이 있고 사람 사는 곳 같아. 다 먹고 살려고 하는데 어떡해. 좀 불편해도 그냥 지내는 거지."

거실 테이블 위에 연필로 쓴 메모지를 보니 창부타령 가사가 3절씩이나 적혀있다. 얼마 전 아들이 사다 준 스마트폰에서 검색해가며 배우고 있다고 한다. '창문을 닫아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간절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90 어르신을 바라보노라니 그분의 청춘이 궁금해졌다. 대문을 나서는 내게 비름나물과 풋고추 몇 개를 손에 쥐여 주었다.

군줄마을 연화씨 집 앞 능소화
군줄마을 연화씨 집 앞 능소화

연화(61) 씨는 버스정류장 근처 길옆 2층 주택에 살고 있다. 아침마다 강아지와 함께 정원을 한 바퀴 돌면서 잡풀을 뽑아주고 있다. 비록 공장 건물들이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지만, 남편과 함께 정성 들여 마당을 손질하고 꽃을 가꾸고 있다. 연화 씨는 최근 몇 달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겪은 자신의 우여곡절을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갑자기 닥친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히려 감사할 게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탐스럽게 핀 능소화 앞에서 감사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연화 씨가 천사처럼 보였다.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비록 마을이 어수선하긴 해도 요즘같이 어렵다는 시기에 공장들이 쓰러지지 않고 잘 돌아가는 것에 감사하다. 착실하게 미얀마 집으로 돈을 보내는 툰망과 단저, 힘든 농사를 짓고 있는 듬직한 성호 씨,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복순 씨, 절망을 희망으로 밝히고 있는 연화 씨에게도 감사하다. 모두 군줄마을에서 어우렁더우렁 함께 살고 있다. /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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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혁 2022-07-20 10:31:36
'참 글을 잘쓰는 기자가 있구나'하고 글을 읽다보니 기고문이었군요. 지역신문에 잘 어울리는 정겨운 기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