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조성 충남연구원 재난안전연구센터장

태풍 힌남노 피해를 입은 포항과 경주 등 남부지방은 피해가 심각하다는데 내가 사는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태풍이 지나갔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역대 가장 강력할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언론에서도 연일 태풍의 경로를 보도하며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지만 생각보다 영향이 적었던 지역에서는 "얼마전 수도권 폭우 떄문에 호들갑이 심했던 것 아니냐" 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엄청남 위력을 예상하고 가슴 졸이던 입장에서 약간의 피해만을 남기고 지나갔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기도 하고, 혹은 다행인가 싶은 마음도 들지만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니 별거아니라 여기는 마음이 썩 개운하지는 않다. 특히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 주민 7명이 사망한 기사를 접하면서 더욱 그러하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은 언제나 안타깝지만 15살 중학생 아들을 떠나보낸 생존자 어머니, 부부가 함께 희생된 이들의 남겨진 자녀, 부인이 사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거동이 불편한 남편 ... 이들에게는 이른 아침 태풍이 지나간 자리가 오래도록 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한켠이 저릿하다.

우리는 재난 이후에도 사람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신속한 대응과 복구가 관용어구처럼 따라다녀서 그런모양이다.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씻어내고 털어내고, 그래서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다. 상처를 받으면 그것을 기억하고 아픔을 치유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 숫자가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올해만 보더라도 8월 집중호우로 22명이 희생되었고, 이번 태풍으로도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나와 내 가족이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러는 '나라를 구하다 죽은것도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 재난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과도하고 감상적인 온정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평생동안 재난과 같은 트라우마 사건을 겪을 확률은 50%에 이른다. 아직 재난을 겪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일 뿐이다.

재난에 의한 희생은 의지나 잘못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혹은 운이 나빴으니 털고 일어나라고 쉽게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의 주체성을 잃었을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무기력과 분노 두 가지 뿐이다. 그래서 재난 현장에서 구조된 사람들과 혹은 재난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운이 나빴을 그 사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조성 충남연구원 충남재난안전연구센터
조성 충남연구원 충남재난안전연구센터

재난 생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돌보는 것은 그들을 연대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지지하는 것, 그리고 기억을 통해 희생이 의미를 갖도록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과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대상자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재난 생존자나 피해자 가족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외상후 성장으로 한발 나아갈 수 있게 하려면 동료상담과 같은 제도적 보완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재난 피해자들이 서로의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미래의 재난 생존자인 우리가 비극을 이겨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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