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장애인 복지 분야의 오랜 주제 중에 하나는 장애인들의 자립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선다는 의미인 '자립(自立)'의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장애인들의 자립지원에 적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이미 '장애'라는 단어가 의미하고 있듯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를 갖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기능적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장애인분들께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완전히 독립한다는 것은 무언가 모순이 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발행하는 자립지원서비스에 대한 메뉴얼에서도 장애에 대한 정의를 "모든 과업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도, 재활 현장에서 목표로 하는 신체적 자립과 경제적 자립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 자기결정에 핵심 가치를 두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 개인이 필요한 공적, 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자립생활이라 정의한다. 결국 자립의 사전적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하여, 행위적 측면이 아니라, 장애인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타인에게 예속되거나 스스로 결정하는데에 방해를 받는 조건에서부터 보호되는 것을 자립생활이라 설명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8월 발표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로드맵과 장애인들의 탈시설과 관련된 여당과 야당이 각각 발표한 법률들을 살펴보자면,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립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장애인들의 주거형태를 시설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로의 전환을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더 향상되고, 그분들이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로드맵과 탈시설 관련 법률에는 '주거형태'에 대한 내용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오히려 공공임대주택에서 홀로 지내셔야 되는 장애인분들에 대한 '삶의 질'과 그들의 '인권'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시설에서 지내시는 전국의 2만9천여명의 장애인분들중에 75%를 차지하는 지적장애인분들, 즉 이 법이 말하고 있는 자립의 대상인 분들에 대한 이해 또한 전무하다.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에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고, 자신들의 고유한 세계관을 갖고 계시는 지적장애인분들을 정해놓은 시간 안에 시설로부터 분리하여 10여평 남짓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킨다하여 자립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것은 방임에 더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라 해서 그들의 선택이 한정적일 수는 없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린다면,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어 요양원을 생각하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이 가정에서 이 아이를 돌보기가 어렵다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 하나로 '시설'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분들이 시설에서만 지내게 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장애인이라 해서 시설에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도 차별이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지난 2020년 시설거주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국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지적장애인 2만1천여 명 중에서 시설 밖에서 살고 싶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10%도 되지 않는다.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것이 자립생활이라면, 일상에서의 소소한 자기결정을 말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자기결정, 즉 주거형태의 선택에서부터 어떠한 제한을 두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제한은 자칫 주변의 공적, 사적 도움을 사전에 차단하는 어리석은 제도일 수 있으며, 장애인들을 더 큰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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