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이반 일리치는 현대 문명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뛰어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다. 신부로서 뉴욕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어 사제직을 버린 사람이다. 사회학, 철학, 경제학, 종교학 등 다분야에 걸쳐 탁월한 성찰을 선물로 주고 갔다.

그가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엔 삶의 몰수라는 말도 나온다. 유통되는 상품의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정작 중요한 삶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문화에 변질이 일어난다고 본다. 20세기 중반을 '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들의 시대'라고도 일리치는 말한다. 교육자, 의사, 사회사업가, 과학자 등 서비스 제공자들이 그동안 아무런 지탄도 없이 반사회적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의 순기능이 있지만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어두운 구석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음을 전문가 집단의 내부에 밝은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은 1978년에 출간되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집권한 해가 1979년, 미국의 레이건이 집권한 해가 1981년이니 각기 1 년 전, 3년 전이다. 이 책에서 과거 10 년간 일어난 사회 문제들에 대한 비판도 곧잘 눈에 뜨인다. '최근 10 년 사이 전 세계의 전기 스위치 사용자는 세 배가 증가했고, 수세식 화장실은 편안한 대변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고압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부드러운 화장지가 없다는 이유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1978년의 10년 전은 1968년. 68 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유럽 전반의 고루하고 답답한 문화에 대항해 대대적인 문화 혁명이 일어났다.

68 혁명이 흐른 후에도 지성이나 자유의 물결에선 큰 변화가 생기나 사회의 구조 자체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형태가 강화된 것으로 유추 가능할 수 있음이 일리치의 이 책이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79년의 대처, 81년의 레이건에 의해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촉발될 수 있는 토대가 꾸준히 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를 무조건 매도할 생각은 없다. 어느 사상이든 나름의 일리가 있으며 그것은 그 반대되는 논리와 더불어 상대적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것인데 자유주의와 대립각을 세우는 공화주의 역시 인간의 본질에 입각한 것이기에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면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도 중시하되 공익적인 것과 충돌할 때 자유 내지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한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신자유주의의 과도로 인해 세계가 양극화, 소비의 팽배로 인한 문화의 변질, 환경 파괴에 따른 기후 재앙의 먹구름이 깊은 것은 이젠 상식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치가 올라가기 직전에 일리치의 빼어난 명저가 이미 출간되었다. 인류의 우매함이 또다시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눈 앞의 것에 가려 먼 것, 가치 있는 것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놓치는 것, 상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둠을 깊게 하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일리치 등 뛰어난 선각자들이 진정성의 목소리로 외친 것들에 대해 인류가 진즉에 귀를 기울였다면 우리는 지금 보다 나은 현실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늦은 지금이지만 더 이상의 상실과 시간 지연은 인류 문명 자체에 위험하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상실의 반복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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