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해남 땅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종리 마을이 있다. 송호항이 가까이 있고 좀 더 걸으면 송호 해수욕장이 나온다. 문학 레지던시 토문재도 이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토문재에 체류중인 나는 오전엔 글을 쓰고 오후 적당한 시간이면 송호 해수욕장으로 걷는다. 지금은 봄이기에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없다. 그저 바다이다.

이곳 바다는 모랫벌과 갯벌이 함께 있다. 갯벌엔 파래도 걸리고 작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이곳의 낙조는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모랫벌과 갯벌이 함께 주는 독특한 서정도 한몫 할 것 같다. 갯벌에 고인 바닷물을 석양이 물들이는 모습은 슬프고 그윽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의 낙조에 깊게 끌리는데엔 지금 퇴고하는 장편소설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소설의 소재가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에서 파생되는 많은 스토리들이 있지만 중심 인물은 아버지라는 실존적 존재이다. 92세의 연세가 낙조와 어울린다.

얼마 전엔 땅끝달마산악회에 토문재의 촌장님과 함께 참석해 광양의 백운산을 등반했다. 남도에서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정상에 서자 섬진강이 보이고 순천이 멀지 않다. 매화가 피고 노란 산수유가 아름답다. 하산할 때 곁에 걷는 분이 산악회 회원 중에 가장 나이가 드신 분이었다. 마침 송종리 마을에 산다고 한다. 어릴 적의 이 마을의 모습을 여쭙자 전깃불도 없었고 초가뿐이라고 말한다. 부친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이라서 어업에 종사했을 것 같은데 어린 시절의 이 마을에 배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산 후 뒷풀이까지 즐겁게 마치고 토문재 내 방에 들어와 <송종리 마을 사람들>이란 책자를 펼쳤다. 송종리 마을 사람들과 토문재에 체류한 작가들의 글들을 함께 엮은 책으로 토문재 촌장님이 준 것이다. 산악회에서 가장 나이가 드신 분도 <가족 사랑>이라는 제목의 소박한 시를 써서 실었다.

'늙어도 곱네//예쁘네//손자, 손녀도 보고//보고 또 보아도//내 가족들의 삶//며느리도 어찌 이리 이쁘당게//또 보고 싶당게'

가족의 화목한 정이 구수한 전라남도 사투리 속에 정겹다. 인생을 잘 사시고 노후도 잘 맞으시는 것 같다.

'아따 이게 뭐단가//계란은 아침이고//복숭아는 저녁인가 보네//민어도 잡고, 삼치도 잡고, 문어도 잡아옴세//이게 내 특기 아닌가.'

마을의 다른 분이 쓴 <우리 색시>는 미소가 돌게 하고 바닷가 마을의 정취가 물씬하다.

마을 사람들의 시를 하나하나 다 읽었다. 물론 전문적인 시들이 아니며 토문재 촌장님과 작가들의 도움으로 소박하게 나온 글이다. 사진도 곁들여 있기에 이 마을이 좀 더 깊게 와닿는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가 없다. 지금껏 나는 바다와는 먼 도시에서 살았다. 바다는 그저 스치거나 여행의 대상지였다. 비록 한달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바닷가에 머물다보니 바다도, 바닷물을 물들이는 낙조도 일회성을 넘어 일상에 가깝게 내게 들어오고 있다. 마치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바다를 매일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은 혜택이다. 아버지의 지금 노후의 삶도 낙조를 닮았다. 아버지에 대한 것은 노인 문제도 포함된다. 바다에 나가 낙조를 매일 보다시피하니 낙조를 닮은 노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어진다. 노인이 보다 깊게 스미는 자리에 선 것이다. 이 마을을 떠난 후에도 이번에 새롭게 체화된 낙조의 여운은 내 삶에 묵중한 영향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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