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종수 건국대학교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겸임교수·문학박사

팔마비 정면
팔마비 정면

하마비는 들어봤겠으나 팔마비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전남 순천에는 보물로 지정된 팔마비(八馬碑)가 있다. 일명'순천 팔마비(八馬碑)'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건립한 비석이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승평부에는 수령이 교체되면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최석은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경으로 떠난 후 자신이 기증받은 말과 자신 소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후부터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고,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때의 팔마비는 1300년대 초반 쓰러져 공민왕 때 부사 최원우가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그것도 정유재란(1597년)으로 소실돼 없어졌다. 광해군 8년(1616년)에 순천부사로 부임한 이수광(1563~1628)이 고을 백성들의 협조를 얻어서 이듬해(1617년) 고려 당시 받침인 대석(臺石)에 비를 재건하였다.

이수광은 비를 다시 세우는 뜻을,'이곳을 지나는 청렴한 선비는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그 절조를 더욱 굳게 할 것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은 장차 두려워하며 마음을 고무시켜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수광의 이 말에 팔마비의 의미가 잘 함축되어 있다.

승평부 읍민들은 부사 최석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고, 그 후 부사로 부임한 최원우와 이수광은 최석의 청렴을 본받으며 쓰러진 비석을 일으켜 세우고 중건하였다. 그러면서 공직자로서 최석의 청렴과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마음에 새기고 그것이 당대는 물론 후세에까지 길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현대라고 해서 공직자의 자세가 어찌 다를 수 있으랴. 다시 팔마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순천 팔마비

세종 때의 집현전 학사였던 이석형(1415~1477)의 집은 성균관 서쪽에 있어 냇물과 숲이 깊숙하고 그윽하였다. 망건 바람으로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휘파람 불며 노래하기도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붙잡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띠 풀로 이엉을 한 정자 몇 칸을 동산 가운데에 짓고 이를'계일정(戒溢亭)'이라고 하였다. 이석형은 연못을 파고서 물이 가득 차면 열어놓고 줄면 막아서 항상 물이 넘치지도, 줄지도 않게 조절하였다.계일정 이름을 지은 사람은 친구인 김수온이었는데, 그는'계일정기(戒溢亭記)'에서 그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결이 흐려지는 것은 사람이 욕심에 빠져서 점점 얽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이 맑고 흐린 것은 잘 보지만 차고 넘치는 것은 소홀히 한다. 마음을 맑게 하여 본체의 밝음을 얻으려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 조금 삼가지 않으면 교만과 넘침이 절로 이르니 곧 사람마다 반드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 이름을 '계일(戒溢)'이라 한 것이다."

넘치고 모자라는 것이 어찌 연못뿐이랴. 사람의 관계도 그와 같고, 사람의 욕심도 그와 같아서 항상 모자라고 넘치는 것들이 서로를 갈라놓기도 하고 소원하게도 한다. 이석형은 성삼문, 신숙주와 친구였다. 세 사람은 세종 24년(1442년) 진관사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한 집현전 학사 6명에 포함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런데, 계유정난(1453년)과 단종복위 사건(1456년)은 세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성삼문은 사육신의 일원으로 처형되었고 신숙주는 세조 편에 서서 훈구파의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이석형은 그때 지방에 근무하고 있어서 용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말년에 집 근처에 연못을 파고 계일정을 지어 유유자적하였다. 이석형은 권력과 재물 그리고 복을 다 누린 사람이기에 김수온이 그것들이 넘치지 않게 늘 경계하라는 의미로 정자 이름을 계일(戒溢)이라 지었던 것이고 이석형은 그 뜻을 헤아려 삼가고 삼가 복록을 누리며 살다 갔다.

김종수 건국대학교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겸임교수·문학박사
김종수 건국대학교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겸임교수·문학박사

공직자로서 청렴과 공평무사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승평부사 최석의 팔마정신(八馬精神)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분수를 지키고 처세를 지혜롭게 한 이석형의 계일정신(戒溢精神)은 비단 공직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심하고 경계해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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