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 하듯 과거·미래 공존하는 '마법의 시간'

드론으로 내려다본 옥산사거리 풍경 /  최석묵 제공
드론으로 내려다본 옥산사거리 풍경 /  최석묵 제공

옥산사거리는 묘한 곳이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처음 사거리를 만난 건 40여 년 전 이 동네로 시집왔을 때다. 당시 국숫집이 약국으로, 다방이 합기도관으로, 여관건물이 북카페로 변하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양새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시절에 있던 자전거포, 미용실, 도장 가게 등 몇 군데는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 옥산에서 청주로 나가는 길이 4차선으로 시원스럽게 확장됐다. 반대로 보면 청주에서 옥산으로 들어오는 길도 훤해진 것이다. 옥산사거리로 들어서면 청주 쪽은 4차선으로, 동네 안길은 아직 좁은 2차선 길이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과거, 현재, 미래가 섞여있는 마법의 공간이다.

사거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조그만 빵집이다.

온가족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빵집매장 (오른쪽부터 배문식, 왕민숙, 배소한, 배지영)
온가족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빵집매장 (오른쪽부터 배문식, 왕민숙, 배소한, 배지영)

오래된 빵집일수록 '빵집'이란 말이 참 정겹다. 이른 아침부터 빵 굽는 냄새가 사거리로 퍼진다. 구수하고 달콤하다. 23년 동안 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장(배문식)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도 함께 정성껏 빵을 굽고 매장에 예쁘게 진열하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생동감 있고 사뭇 진지하다.

어려운 이웃에게 종종 빵 기부를 하는 주인장은 두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는 큰아들이 괴산유기농엑스포 제과제빵 부문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두 아들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해 이 분야에서 장인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빵에 진심인 젊은 장인과 대를 이은 빵집이 오래도록 존재할까? 사거리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빵집 맞은 편엔 오래된 택시사무실이 있다.

주민들의 발이 되고 있는 택시사무실 기사님들 (오른쪽부터 최현용, 이대연, 이종복, 반낙권, 함양호, 한종석)
주민들의 발이 되고 있는 택시사무실 기사님들 (오른쪽부터 최현용, 이대연, 이종복, 반낙권, 함양호, 한종석)

마치 70년대 영화에나 나올법한 조그만 건물이다. 깔끔한 택시 서너 대가 늘 대기한다. 인상좋은 기사님들은 벌집 드나드는 벌처럼 사무실을 들며 날며 마을 곳곳으로 운행한다. 옥산을 거점으로 택시영업을 하는 이곳은 50년은 족히 되었다고 한다. 열네 대의 택시가 365일 비우지 않고 새벽 5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 운행한다.

경력이 대개 20년 이상이며 가장 오래된 분은 반낙권 씨라고 한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은 이대연 씨가 제일 젊다. 택시연합회는 그동안 혼잡한 사거리에서 교통봉사도 했고 10년 전부터는 옥산중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수락, 장동, 송천, 가락4리 마을 어르신들이 500원만 내면 탈 수 있는 '행복택시' 정책에도 동참하고 있다.

건너편엔 보기만 해도 든든한 약국이 보인다.

묵묵히 사거리를 지키고 있는 박정식 약사
묵묵히 사거리를 지키고 있는 박정식 약사

2007년부터 항상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박정식(62) 약사. 사거리는 내가 지킨다는 듯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오랜 세월 약국을 찾는 동네 손님들이 이젠 남 같지 않다. 젊었던 손님이 나이 들어 아픈 모습으로 찾아올 때나 요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어느 날 약국 이용자 명단에서 단골손님이 사망자로 표시될 때는 한동안 마음이 울적하다.

보람 있는 일도 있다. 언젠가 가슴이 아프다는 손님에게 얼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한 위중한 상태였다. 위험한 고비를 넘긴 손님으로부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들었다. 이후 손님들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자연스레 주민들의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다. 약사님도 손님들과 함께 익어가고 있는가 보다.

건너길에는 오래된 사진관이 있다.

새 카메라에 꿈을 키우고 있는 최석묵 사진사
새 카메라에 꿈을 키우고 있는 최석묵 사진사

옥산에서 유일하다. 31년째 일하고 있는 최석묵(56) 주인장은 수입에 상관없이 이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좋은 추억을 간직하러 오는 사람, 행복하게 활짝 웃는 사람들을 날마다 만날 수 있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옛날에는 출장이 많았다. 마을마다 회갑잔치나 칠순잔치에는 꼭 가서 사진을 찍었다. 또 건축 완공이나 큰 행사 등 자료사진이 필요한 곳에도 가야 했다. 아마도 사진관 창고에는 옥산 사람들의 몇십 년 역사가 오롯이 보관되어 있으리라.

얼마 전에 박사과정을 마친 주인장은 큰맘 먹고 좋은 카메라를 구입했다. 고객들에게 좀 더 질 높은 사진을 제공하고 나아가서는 작품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그의 나이 적지 않지만 무슨 상관이랴. 꿈꾸는 건 자유라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꿈꾸는 사람을 청춘이라고 했던가. 느닷없이 오래 살아야겠다는 꿈같지 않은 꿈을 꾼다. 소망과 기대로 가득한 옥산사거리의 미래를 그려본다. 어떻게 변할까. 먼 훗날 은빛 머리칼 단장하고 사거리 한 바퀴 돌아보자. 오늘이 과거가 되고 내일이 현재가 되는 순간을 상상하니 흑백과 칼라를 보듯 은은하면서도 짜릿하다. /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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