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너 같은 놈은 쌔고 쌨어. 너는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어.'

친한 친구와 오래 전에 다투다가 녀석이 한 말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흔적은 있다. 욕의 강도야 얼마든지 소화되고도 남는다. 상처의 핵심은 갈아치울 수 있어, 달리 말하면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기업의 임원이었다. 나도 기업을 다녔기에 그가 그 말을 한 배경을 충분히 안다. 기업은 대체에 익숙하다. 생산 현장이나 인력에선 고장나거나 무능하면 새 기계, 능력자로 대체하면 된다. 그것이 효율적이다. 그 방식이 아니고는 기업체가 성공하기가 어렵도록 세계 구조가 되어 있다.

난 임원까지는 안되고 딴 길을 갔기에 그가 임원임을 떠올리자 상황이 잘 이해되었다.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서 임원으로 살아남으려면 몸이 기업 체질로 되지 않으면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능력이 뛰어나고 기업에서 필요한 자질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기업에 속하지 않는 재주도 많아서 뭘 하더라도 잘 할 녀석이다. 젊을 때는 나와 가치있는 것들도 공유했다. 그래서도 몹시 서운했을 것이다. 친한 사이에 내가 특히 싫어하는 말 중 하나를 들었으니.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그 일이 내 개인적인 체험 차원을 넘어서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이 말이 버젓이 퍼져가도 그에 대한 철학적 항거가 없다시피한 시대를 우리는 살았다. 경쟁이 치열한 국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절실한 말이긴 하나 그로 인해 사회적, 인간적 가치는 추락한다. 인간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그런 말이 사회를 탁하게 휘저어도 올바른 사유, 여과, 반성, 저항이 미흡하기에 개개인에게 당연한 듯 내면화된 면도 있다.

인간은 강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세뇌가 가능한 이유이다. 집단 최면, 집단 세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독립성도 있지만 모방, 의존성이 강한 동물이기도 해서 세뇌가 쉽다. 파시즘이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귀한 가치마저 나와 공유했던 녀석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르는 듯 했다. 자신의 본 바탕에 위배되는 말을 쏟아부었음에도 그에 대한 인지의 결여 내지 충분치 못한 깨달음. 그런 현상 역시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견되는 불건강한 현상이다.

내게 독한 말을 하던 녀석의 눈빛도 침울했다. 그만큼 그 말의 독소를 알고는 있다는 말도 된다. 우리가 싸운 이유는 그 독소에 비하면 실은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본성과 정반대에 있는 독화살을 내가 싫어하는 줄을 알면서도 날렸다. 슬펐고 녀석이 안쓰러웠다.

친구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친구나 애인, 부부 사이는 솔직함이 기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더 없이 뜨겁다가도 다툼, 이별, 심지어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그에게 내면화된 기업체, 사회 이데올로기, 통념화 된 신념이 화살을 날린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동화되고도 그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것. 느낌이 있더라도 사회적 독소가 더 강해 그에 휩쓸려 친구에게 정체성을 훼손하는 말을 날렸다는 것.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이 없을 정도로 인식의 결여 내지 망각 상태에 있다는 것. 나는 그것들에 가슴이 아프다. 이젠 내 친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난 사이가 좋다. 그는 여러 가지로 훌륭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큰 문제점을 건드리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존재이다. 우리 사회는 그 귀중한 가치를 상실했다. 너 말고 다른 사람. 아니 또 다른 사람. 사람이 사람을 대체하다보면 처참한 고독만이 남는다. 당신도 대체된다. 우리 사회는 그리로 향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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