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르네상스 하면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피렌체의 그 유력한 가문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해 르네상스를 꽂피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4 세기에서 16 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현대 문명의 길로 시동을 걸었다. 현대 문명은 긍정적인 것 뿐만 아니라 양극화, 환경 파괴 등 짙은 음영 역시 드리우고 있다. 르네상스가 피어나던 시대에 서구와 이슬람 문명과의 비교만 해도 서구 우월주의 시각으로만 르네상스를 보면 편협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르네상스 자체를 입체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자본, 권력과 예술, 인문학 간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과 인문학이 자본과 권력의 비호 아래 있고 그 그늘에 있다는 듯한 글도 있고 그런 태도가 종종 눈에 띈다. 현실적으로는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상이 심하게 추락해 불문과나 독문과, 철학과 등의 폐지를 겪은지도 오래 되었다. 예술가들 중에도 예술과 자본,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으로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제법 보인다.

지금 미서구의 부와 권력의 축적 요인들은 다양할 것이다. 자체 노력에 의한 것도 있을 것이며 제국주의처럼 외부에서 무력으로 가져온 것도 있다. 르네상스는 서구 문명이 근대화로 나아가는 전환점이기에 오늘날의 미서구 문명의 중요한 토대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빼고 르네상스가 가능한가?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과 지식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니만큼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노예제만 해도 문제가 있다. 긴 암흑 시대도 거치고 고대문명이니만큼 다른 문제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 부흥기에 모델로 삼을만큼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들이 무엇일까.

그 문명을 일군 정치적, 권력적인 것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지금의 서아시아에 속하는 트로이를 정복해 그곳의 자산을 약탈해 일군 경제 토대, 노예제든 직접 민주주의든 기른 정치가, 군인의 역할도 클 것이다.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등에 이어 인간 철학을 연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희곡의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스 신화의 역할도 클 것이다. 조각, 회화 같은 예술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 예술, 직접 민주주의의 기초로서의 사상 즉 예술, 인문학이 빠지면 보통의 무력 국가 외의 무슨 매혹이 있겠는가. 지금의 미서구 문명은 르네상스에 빚지고 있고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에?빚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주춧돌엔 예술, 인문학이 있다. 그럼에도 현대 문명의 주류인 자본가, 정치권력이 예술, 인문학에 감사하기는 커녕 마치 시녀 다루듯 거들먹거리는가. 자본이나 권력을 홀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그것들도 존재 이유가 있다. 지금처럼 미친듯 질주하지 않고 공익을 위한다면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럴진데 크게 퉁쳐서 말하면 자본, 권력과 예술, 인문학은 서로 빚지고 있다. 이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자본, 권력이 주류인 현대 문명이 예술, 인문학을 홀대하고 시녀 부리듯 악세서리 취급하고, 시혜를 베푸는듯 거들먹거리는 것은 모순이자 언어도단인 동시에 배은망덕이기도 하다. 미서구 문명, 현대 문명의 기초 설계 즉 그랜드 디자인에 예술과 인문학, 그 빼어난 예술가들과 철학자, 현자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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